연중시기

[순교] 천상가족을 갈망하며

오마리아

한 집안 안에 내려주신 신앙의 싹이 영원으로 이어지도록 끝까지 신앙을 지킨 위대한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107. 김원중 스테파노

충청도 진천의 발래기에 살던 김원중 스테파노는 본래부터 성품이 순량하고 온후하였으며, 열심과 신덕이 교우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그의 이웃에는 사촌 김선화 베드로가 살고 있었다.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진천 관아에서는 이미 발래기 신자들에 대해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전갈을 보내와 출두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명령을 전해 들은 스테파노는 교우들에게 “이제 들어가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 관아로 갈 것이 아니라 죽음을 달게 받을 정도로 신덕이 깊은 사람만 관아로 가자.”라고 말하였다. 이튿날 진천 관아에서 포졸들이 왔을 때, 발래기 신자들 중에서 김원중 스테파노를 비롯하여 10명만이 자진하여 체포되었다. 그들 일행이 관아로 들어가자 관장은 “일전에 갖다 바친 책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었다. 스테파노는 책을 갖다 바친 적이 없으면서도 “저의 책이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관아에서는 즉시 그를 가두어 버렸고, 이때 신성순 회장과 2명의 신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겁에 질려 배교를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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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심아기 바르바라

오빠 심낙훈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신자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생활. 그러던 중 성인들 모범에 감동해 하느님께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했으며, 이후 조용히 집안에서만 지내면서 모범적으로 교회 법규를 지켜 나갔다. 신유박해로 오빠가 체포된 후 심아기에게도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어머니에게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제가 천주의 성스러운 뜻에 순종하도록 놓아두십시오”라고 말한 뒤, 자진해 그들 앞으로 나아가 분명하게 신앙을 고백했다… 계속되는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나이 18살에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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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안군심 리카르도

충청도 보령에서 출생. 청년 시절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 경상도로 이주하였으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교회 서적을 베끼는 일에 몰두하면서 살았다. 본래 명랑한 데다가 겸손하고 친절하였던 그는 누구나 애덕으로 대하였고, 그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는 것을 낙으로 알고 생활하였다. 또 그는 자식들의 교육에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와 묵상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았으며, 보통 1주일에 세 번씩은 대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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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윤봉문 요셉 – 거제도의 복음 사도이며 첫 순교자

부산 동래에서 윤사우와 막달레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거제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윤사우는 당시 필묵 장사를 했는데, 이때 그는 붓 대롱 속에 교리문답서를 감추고 다니면서 비밀리에 전교했다. 복자 윤봉문은 아버지를 이어 대바구니에 필묵과 함께 붓 대롱 속에 교리문답서를 숨겨 넣고 다녔다. 「약 처방문」은 복자 윤봉문이 휴대용으로 만든 약 처방전이다. 전교를 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을 돕기 위해 병명에 따라 약 처방을 적어 놓은 것이다. 「위장교리서」(僞裝敎理書)는 복자 윤봉문이 천주교 교리를 가르칠 때 관헌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들었다. 앞면에는 소학을, 뒷면에는 교리를 적어 교리를 가르치다가 수상한 인기척이 나면 소학을 펴서 공부하는 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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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국승 바오로

충청도 음성 양반 집안에서 출생. 장성한 뒤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된 그는 권일신을 방문, 그에게서 교리를 배우고는 교회의 본분을 지키기 시작. 그러나 순교에 이를 만큼 신앙이 굳지는 않았던지 1795년 을묘박해 때 충주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석방됐다. 잘못을 뉘우친 이국승은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동정을 지키기로 했다. 혼인을 재촉하는 부모 성화를 피해 한양으로 이주한 그는 최창현, 정약종 등 교회 지도층 신자들과 교리를 익히고,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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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현계흠 플로로

한양 중인 집안에서 출생. 역관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으나 그는 약국을 운영하며 살았다. 성 현석문과 성녀 현경련의 아버지.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신해박해 때 체포됐다가 풀려난 후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후에는 교회 일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신입 교우들을 인도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했다. 주 신부에게는 자기 집을 피신처로 내주기도 했다. 당시 그의 집은 평신도단체 명도회(明道會)의 하부 조직이자 비밀 집회소인 ’6회’의 하나였다. 신유박해가 일어났을 때 피신해 있던 현계흠은 자기로 인해 온 일가친척이 시달림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4월쯤 포도청에 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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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성인 검색은 성바오로딸수도회‘복자 124위’자료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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