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여성공동체 주역들

오마리아

강완숙과 함께 여성공동체를 이끈 여인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33. 강경복 수산나

양인 집안 출신으로 궁녀가 돼 양제궁에 살던 강경복은 1798년 송 마리아에게 천주교 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앙을 권유받는다. 이때부터 그는 다른 궁녀들과 함께 교리를 배우며 열심히 신앙생활. 특히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 강완숙(골룸바, 1861~1801)과 함께 주문모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나 신앙집회에 참석. 그러다가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난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신앙과 교리를 실천… 포도청으로 압송된 강경복은 온갖 형벌에 굴하지 않고 “저는 천주교에 깊이 빠져서 이를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였으며, 양제궁에 거처하면서 주문모 신부님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천주교 신앙을 믿는 마음이 갈수록 굳어져 왔으니,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조금도 신앙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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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문영인 비비안나

한양에 거주하던 중인 집안의 셋째 딸로 출생, 일곱 살이 되던 1783년에 궁녀로 뽑혔다. 관리들은 문 비비안나의 총명함과 용모를 보고 궁녀로 선발. 궁궐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스물한 살 되던 1797년에 문 비비안나는 병에 걸려 잠시 궁궐에서 나오게 되고 바로 이때 한 노파에게서 교리를 배웠다. 그 뒤,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알게 되고 1798년에는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때부터 강 골룸바의 집을 찾아가 교우들과 함께 교회 서적을 공부하거나 미사에 참여하였다… 구전에 따르면 그녀의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솟구쳐 꽃으로 변해 떠올랐다고 한다. 관리들은 이러한 현상에 놀라워하며 목격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절대로 발설하지 못하게 단속했다고 한다. … 마침내 참수형이 집행되고 그녀의 목을 칠 때 그 상처에서 젖과 같은 흰 피가 흘러나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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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한신애 아가타 - 많은 성물

충청도 보령에서 양반의 서녀(庶女)로 출생. 장성한 뒤 한양에 살던 조례산의 후처로 들어가 살았다. 그러다가 1795-1796년경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의 전교 덕택으로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전처의 딸과 함께 열심히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 그런 다음 강 골룸바의 집을 오가면서 정복혜 칸디다 등과 함께 교회 일을 도왔고, 자신의 종이었던 소명을 강 골룸바의 집으로 보내 교리를 배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녀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신애는 천주교에 빠져 이미 여러 해 동안 실천해 왔으며, …… 강완숙과 체결하여 주문모를 찾아보고 세례와 세례명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각처의 남녀 무리들을 집으로 불러들였고, 서적과 교회 물건들을 곳간에 숨겨 두었다. 그러다가 체포된 후에는 ‘스스로 지은 죄를 생각해 보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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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김연이 율리안나

양인 출신의 부인. 한양에 살 때에 한신애 아가타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 그리고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의 집에서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천주교의 매파’(媒婆 : 중매인 노파)라고 불릴 정도로 교리를 전하는 데 열중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이름은 교우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엄한 형벌 가운데서도 “만 번 죽더라도 천주교를 믿어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신앙을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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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강완숙 골롬바 – 이 시대, 순교 신심에서 길을 찾다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양반의 서녀(庶女)로 출생. 어릴 때부터 지혜로움이 뛰어나고 정직하여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1801년에 순교한 홍필주 필립보는 그녀의 아들.

시어머니와 전처의 아들인 홍 필립보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킴. 그러나 신앙 때문에 남편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시어머니와 아들 홍 필립보와 의논한 뒤 함께 상경.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그를 도와 활동. 주 신부는 강 골룸바의 인품을 알아 여회장으로 임명…

박해자들은, 강 골룸바에게서 여섯 차례나 혹독한 형벌을 가하였지만 변하지 않는 그녀의 굳은 신앙심을 보고 “이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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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홍필주 필립보 

 

충청도 덕산의 양반 집안에서 출생.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 계모 강완숙 골룸바는 홍 필립보가 입교한 뒤로는 자신이 이해한 교리를 아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며, 홍 필립보 또한 어머니 강완숙을 모범으로 삼았다. 강완숙이 주문모 신부를 집에 모신 이후 주 신부의 복사로 활동, 교회 일을 도왔다… 포도청으로 끌려간 홍 필립보는 혹독한 형벌이 계속되면서 그의 마음은 차츰 약해지게 되었다. 이때 조사를 받으러 가던 어머니 강 골룸바가 그를 보고는 “필립보야, 너는 어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머리 위에 임하시어 비추고 계심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그릇된 길로 가려고 하느냐?” 하고 권면하였다. 이에 그는 곧장 마음을 돌이켜 박해자들을 향해 ‘절대로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 자세한 성인 검색은 성바오로딸수도회‘복자 124위’자료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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