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불굴의 용기로

오마리아

놀라운 불굴의 용기로 신앙을 증거한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10. 박취득 라우렌시오

충청도 홍주에서 출생. 한양으로 올라가 지황 사바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에 노력…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옥중편지에 “옥에 갇힌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천주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지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결에 ‘십자가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이 발현은 약간 희미하기는 하였지만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모두 일천 사백 대 넘게 맞았고, 8일 동안 물 한 방울을 마시지 못한 적도 있어서 그가 죽은 줄로 알고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러나 다음날도 상처가 기적적으로 나아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이를 요술이라고 생각한 옥졸이 새끼줄로 그의 목을 졸라서 그는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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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방 프란치스코,

충청도 면천 고을 여름이 마을 태생. 감사의 비장(裨將)을 지냈다. 그는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박취득(라우렌시오), 원시보(야고보) 등과 자주 만나 교리를 연구하고 실천…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마지막 밥상을 받았을 때 함께 선고받은 교우 2명은 눈물을 흘렸으나 방 프란치스코는 오히려 감사기도를 드리며 그들을 격려. 세 사람은 함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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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신석복 마르코

비교적 넉넉한 살림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를 지으며 누룩과 소금 행상을 하면서 살았다. 밀양에서 김해로 가려면 명례 나루터에서 낙동강을 건너야 했다. 이곳에는 박해를 피해온 교우들도 정착해서 살았는데, 이들의 권면으로 신자가 된 듯하다. 형제들은 그가 순교할 당시 신자가 아니었지만 훗날 모두 입교했다… 여러 차례의 문초와 형벌을 받아 유혈이 낭자하고 뼈가 부러졌지만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저를 놓아주신다 하여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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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오반지 바오로

장성할 때까지 공부와는 담을 쌓았으며, 혼인한 뒤에는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다 날려 버리고 말았다.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된 것은 40세가 훨씬 지난 무렵. 이때부터 그는 아주 성실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리스도교적인 체념으로 가난을 참아 견디었으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본분을 아주 정확하게 지켜 나갔다. 오 바오로의 열심은 이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관장은 어떠한 형벌과 유혹으로도 오 바오로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는 마침내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오 바오로는 “만 번 죽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할 수 없다.”는 말로 신앙을 증언하였다. 그가 순교한 날에는 ‘백일청천에 무지개가 떠서 그의 시체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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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도기 바오로

충청도 청양 출신. 배운 것은 없었지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이웃에게 권면. 박해를 피해 인근 정산에서 옹기를 구우며 지내던 그는 1797년 정사박해 때 체포. 모진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용감하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 체포된 후에 자주 굶주려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끊임없이 천주를 생각하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는 천사의 말씀을 전해 주는 목소리를 듣고는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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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이정식 요한

경상도 동래 북문 밖에 살던 사람. 젊었을 때 무과에 급제한 뒤 동래의 장교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 59세 때에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는 첩을 내보내고 열심히 신앙생활. 가족을 열심히 권면하여 입교시켰으며, 화려한 의복을 피하고, 항상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애긍에 힘쓰면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한 작은 방을 만들어 십자고상과 상본을 걸어 놓고 묵상과 교리 공부에 열중하였다. 옥중에서 이정식 요한 회장과 동료 교우들을 만나, 서로를 위로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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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양재현 마르티노

 

동래에서 좌수(坐首)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정식 요한 회장을 만나면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후 그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 1868년의 박해 때에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동래 포졸들에게 체포… 관장이 배교를 강요하자, “절대로 천주교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옥중에서 이정식 요한 회장과 동료 교우들을 만나, 서로를 위로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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