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한 알의 밀알

오마리아

한국교회의 밀알이 되어준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2.주문모(야고보) 신부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신부. 1794년 북경주교 구베아의 명을 받고 한국 잠입을 결행하여 12월 23일 조선인 신자 지황과 윤유일 등의 안내로 조선에 입국.

‘사형 집행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맑고 청명하던 하늘에 갑자기 두터운 구름이 덮이고, 형장 위에 무서운 선풍이 일어났다. 맹렬한 바람과 거듭 울리는 천둥소리, 억수 같이 퍼붓는 흙비, 캄캄한 하늘을 갈라놓는 번개, 이 모든 것이 피비린내 나는 형벌을 집행하는 사람들과 구경꾼들의 가슴을 놀라고 서늘하게 하였다. 이윽고 거룩한 순교자의 영혼이 하느님께로 날라 가자 구름이 걷히고, 폭풍우가 가라앉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순교자의 머리는 장대에 매달렸고, 시신은 다섯 날 다섯 밤 동안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그러나 매일 밤 찬란한 빛이 시신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 황사영 백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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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라 감사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신음 소리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다고 하면서 임금이나 부모의 명은 어길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윤지충의 친척들은 9일 만에 관장의 허락을 얻어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었다. 이때 그들은 그 시신이 조금도 썩은 흔적이 없고, 형구에 묻은 피가 방금 전에 흘린 것처럼 선명한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이후 교우들은 여러 장의 손수건을 순교자의 피에 적셨으며, 그중 몇 조각을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당시 죽어가던 사람들이 이 손수건을 만지고 나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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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지충 바오로

전라도 진산 장구동에 거주하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출생. 순교한 윤지헌 프란치스코가 그의 동생. 본디 총명한 데다가 품행이 단정하였던 윤 바오로는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진사 시험에 합격. 또 이 무렵에 고종 사촌 정약용 요한 형제를 통해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으며, 인척인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윤지충 바오로는 우리 교회 역사상 최초의 피의 순교자로서 순교 당시 그의 나이가 33세로서 예수님이 사형받으신 나이와 같으며, 사형 시간도 오후 3시경으로 역시 예수님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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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상연 야고보 

진산의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출생. 본디 그는 학문에 정진해 오고 있었으나, 고종사촌인 윤지충 바오로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에는 기존의 학문을 버리고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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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신부는 남대문 안에 있던 강완숙의 집으로 피신하였지만 집주인 최인길이 체포되고 이어 윤유일, 지황도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포도대장은 자신의 손으로 주 신부의 거처를 알아내어 일을 빨리 매듭지으려고 무서운 형벌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1795년 5월 12일 이들 세 명은 포도청에서 매를 맞아 순교하고 말았다.

 

 

5. 윤유일 바오로

윤유오 야고보는 그의 동생이고 윤점혜(아가타)와 윤운혜(루치아)는 그의 사촌 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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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인길 마티아

최인철 이냐시오는 그의 동생

 

7. 지황 사바

지황(사바, 1767-1795)은 한양의 궁중 악사 집안 출신. 천주교 소문을 듣고 자원해서 교리를 배워 입교. 1973년 성직자 영입 운동 때 북경으로 가 구베아 주교를 만나기도 한 그는 국경에서 주문모 신부를 몰래 만나, 조선에 잠입시키는 데 성공. 주 신부의 입국 사실이 알려지면서 체포된 지황은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윤유일, 최인길과 함께 매를 맞아 순교.

 

 

25. 윤유오 야고보 – 윤유일의 동생

(사형 선고를 받은 윤유오 야고보가 형장으로 압송되고 있다)

1795년에 순교한 윤유일 바오로가 형이다. 갖가지 문초와 형벌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은 그는 “저는 형이 가르쳐 준 십계명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로 알고 있습니다.… 진실로 배교할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62. 한덕운 토마스

윤지충 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교회와 교우들 소식을 알아보러 한양으로 올라간 그는 거적에 덮여 있는 홍낙민 루카의 시신을 보고는 놀라고 비통한 마음으로 애도를 표했다. 또 서소문 밖에서 최필제(베드로)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다. 한덕운 토마스가 사형 선고를 받기 전에 한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다.

“저는 천주교의 교리를 깊이 믿으면서 이를 가장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비록 사형을 받게 되었지만, 어찌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있겠습니까? 오직 빨리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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