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시기

[순교] 신앙을 지킨 과부들

오마리아

슬픔을 딛고 신앙을 지킨 과부 순교자들을 소개합니다.

 

28. 정복혜 칸디다

한양 근처의 양인 집안에서 태어나 혼인한 다음에도 한양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1790년 무렵 이합규를 만나 교리를 배우면서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으며, 그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 과부가 된 뒤에는 한신애 아가타, 윤운혜 루치아 등과 함께 신자들 사이의 연락을 도맡았으며, 교우들이 만든 교회 서적을 팔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우들과 함께 모여 교리를 강습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도 노력하였다… 정복혜 칸디다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남자 신자들과 어울려 부녀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였으며,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모아 한신애의 집에 숨겨 두고 훗날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사용하려고 하였으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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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이시임 안나

1782년 충청도 덕산 양반 집안에서 출생. 재색을 겸비한 처녀로 교리 실천에 뛰어난 열성을 보였다. 또 일찍부터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는데, 이 때문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 동정녀 공동체로 가서 그들과 함께 살기로 작정하였다… 체포된 후 감옥에서 어린 아들이 자신의 품에서 죽는 괴로움 속에서도, 또한 여러 차례의 문초와 형벌 속에서도 결코 신앙심을 잃지 않았다. 이 안나의 마지막 답변은 이러하였다. “예수님과 마리아께서 저희를 부르시면서 같이 천국으로 올라가자 하시는데, 어떻게 배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잠시 지나가는 목숨을 보존하려고 참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잃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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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심조이 바르나바 

인천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20세 무렵에 홍봉주 토마스와 혼인. 순교자 홍낙민은 그녀의 시조부였으며, 그녀와 같이 체포되어 순교한 홍재영은 그녀의 시아버지였다. 남편 홍 토마스도 순교하였다. 심 바르바라는 지능이 아주 낮았다. 그러므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요한 교리 외에는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신앙은 말할 수 없이 굳었으며, 자선하려는 마음 또한 열렬하였다… 체포될 때나 문초를 받는 가운데서도,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건강이 나쁘고 체질이 약하였음에도, 앞에 늘어놓은 형구를 볼 때나 관장들의 고함 소리를 들을 때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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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김조이 아나스타시아

충청도 덕산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장성한 뒤 이성삼 바오로와 혼인. 그리고 남편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 그녀의 가정은 모두가 열심한 신자로 성가정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녀는 언제나 교리를 실천하는 데 열심이었으며, 자녀들의 교리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김조이는 그 남편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익혔고, 서양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 마음을 고칠 줄을 모르니, 참수를 하여도 오히려 죄가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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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봉금 아나스타시아 

124위 순교자 중 최연소 복녀. 이성삼 바오로와 김조이 아나스타시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어머니에게서 훌륭한 신앙의 가르침을 받아 나이가 어렸음에도 자신의 본분을 지킬 줄 알고, 천주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도 알았다. 열 살 무렵에 선교사를 만났는데 그녀의 신앙심에 감동하여 성체를 모시는 것을 허락하였다… 관장이 ‘천주를 배반하고 욕을 하면 살려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일곱 살이 되기 전에는 철이 나지 않아서 읽을 줄도 모르고 다른 것도 몰라서 천주님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일곱 살 때부터는 천주를 섬겨 왔으니, 오늘 천주님을 배반하고 욕을 하라고 하시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천 번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하겠어요.”

 

 

101. 최조이 바르나바

경기도 여주에서 순교한 최창주의 딸. 어릴 때부터 교리를 배워 천주교 신자가 된 그녀는 부친이 순교한 뒤에는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천주나 이웃에 대한 열렬한 애덕과 인내는 모든 사람들을 탄복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후 최 바르바라는 친척이나 친구들의 집에 얹혀살아야만 하였다. 그 와중에서도 그녀는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는 시아버지를 자주 찾아갔고, 미약하나마 시아버지와 다른 죄수들에게 도움을 베풀려고 노력하였다…

그녀의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최조이는 그 부친과 시아버지가 모두 천주교 신자로 흉악한 종자이며,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앙을 믿어 고질이 되었다. 천주교 교리를 가업으로 여기고, 형벌을 다반사(茶飯事)로 여기니, 이는 죄를 끊임없이 저지르는 무리와 같다.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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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이조이 막달레나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장성한 뒤에 그녀는 금산 고을에 살던 김성서의 아우와 혼인을 하였으나, 19세 때 자식도 없이 과부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죽기에 앞서 그녀에게 십계명을 열심히 지키도록 당부하였다. 남편이 사망한 뒤부터 오로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시부모에 대한 효도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조이는 천주교 신앙을 신봉하여 천당 지옥설을 깊이 믿었으며, 죽은 남편의 훈계를 버리기 어렵다고 하였다. 만일 죽지 않고 살게 된다면 다시 천주교 교리를 배우겠다고 하였으니, 그 독함이 이를 데가 없다. 또 오직 빨리 죽기만을 원한다고 하였으니, 지체 없이 사형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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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성인 검색은 성바오로딸수도회 ‘복자 124위’ 자료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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