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인순] 아테네 도시 풍경, 아레오파고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와 아테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는 아름다운 저택이 늘어선 한적한 길을 지나갔다.

커다란 나무의 가지들이 담 밖으로 늘어진 집은 대통령궁과 수상관저라고 한다.

대통령궁을 이렇게 가까이 지나가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운치 있는 길을 지나 다시 시내로 들어섰다.

길 한가운데 메란자라는 열매가 달린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었다.

주렁주렁 달린 노란 열매는 오렌지같이 생겼는데 너무 써서 먹을 수는 없다고 한다.

비옥한 땅에 과일이 풍부한 나라라 그렇지 저런 열매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어떻게든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국회의사당 앞 광장을 찾아갔다.

전통적인 복장을 한 근위병들은 이십 대 초반의 앳된 청년들이었다.

 

키가 이미터는 되어야 의장대에 지원할 수 있다는데 늘씬한 키에 긴 술이 달린 빨간 모자,

짧은 주름치마, 빨간 구두코에 검고 커다란 방울을 단 군화를 신고 독특하게 걷는 그들을 보기 위해

광장에 서성이는 사람들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발을 일직선으로 들어 올렸다 앞으로 내뻗치며 걷는 독특한 걸음걸이는

그리스를 침략했던 나라를 물리치고 밟아버린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최초로 올림픽경기가 열린 근대 올림픽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마침 문이 닫혀 있어서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해야 했는데 5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관중석 꼭대기에 오륜마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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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시내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곳은 BC 330년 고대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던 때 한 아테네 병사가 달려와

아테네 시민들에게 마라톤 평야에서의 승전소식을 알리고 쓰러져 숨을 거둔 장소라고 했다.

이곳에서 아테나 여신을 위한 축제가 벌어졌다고 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1870년에 발굴, 복원된 모습이다.

이 경기장을 스피로스 루이스 경기장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1896년, 최초의 근대 올림픽경기가 열렸을 때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했다.

이천 사백여년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피를 끓게 했던 경기장,

세계올림픽의 산실에 하루를 마감하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디오니시오 주교좌성당에 도착한 우리는 그리스에서의 첫 미사를 드렸다.

 

성당 벽에는 아레오파고스에서 설교하는 사도 바오로의 초상화가 있었는데

디오니시오 주교가 사도 바오로의 설교에 감화를 받아 개종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드리는 첫 미사에서부터 바오로 사도의 흔적과 업적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미사가 끝난 다음 마리나 자매는 우리를 성당 가까이에 있는 한식집으로 데려갔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교포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한국 도시 주변의 시장거리에 있는 식당처럼 소박하고 친근했다.

주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은 김치찌개와 나물반찬으로 모두들 흡족해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

 

2월 13일의 아침이 밝았다.

부지런한 자매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제 갔던 올림픽경기장 주변을 산책하고 왔다고 한다.

오늘은 아테네 전 지역에 데모가 있다 했기에 예정보다 일찍 호텔을 나와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제 올라갔던 아크로폴리스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오래된 공연장이 있었다.

이 원형극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술과 연회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진 극장이라고 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만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극장으로

이곳에서 극의 시초가 된 고대 희랍의 그리스의 연극들이 공연되어

그리스의 예술이 꽃피는 데 큰 역할을 한 장소라고 한다.

 

건너편으로 어제 다녀온 아크로폴리스와 복원 중인 파르테논신전이 보이는 아레오파고스는 낮은 바위 언덕이었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여 살인죄를 벗어난 데서 유래했다는 아레오파고스는

자신의 견해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이들이 설교대로 사용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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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에 교회를 세우고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를 거쳐 아테네에 도착한 바오로는

이 아레오파고스 언덕에 올라와 그리스 시인 아라토스의 시 ‘현상 5’에 나오는

‘우리도 그의 자녀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리스 시민들이 예배드리는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자신이 전하는 하느님이라고 설명했다.

울퉁불퉁한 바위로 된 낮은 언덕에 모여든 사람들은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사도 바오로의 연설을 들었지만

그중 몇 사람만 그의 말에 관심을 보였을 뿐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사도 17,16-34)고 한다.

비록 박해는 받았지만, 그때까지 성공적인 선교활동을 이어오던 바오로에게

아테네에서의 실패는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 때 바오로는 인간적인 능력을 내세워 주님을 전하려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도행전의 말씀을 듣고

바오로 사도의 설교를 기념하는 네모난 표지판을 만져보는 우리 위로 계속해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

혹시나, 우리에게 하느님만이 세상의 지혜를 이긴다는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성령이었을까?

아레오파고스에서 낮은 돌계단을 내려오니 나무에 둘러싸인 빈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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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였던 이곳은 아테네 시민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 찾아와 자기 생각과 사유를 펼치면서 활발하게 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또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 고대의 저명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 자유로운 토론의 광장(Agora)에서 그리스의 민주정치가 시작되었다는데

그 옛날의 명성을 되살려줄 흔적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돌이 깔린 작은 광장 한편에

바오로 사도가 아레오파고스에서 행한 연설문(사도 17, 16-34)이 새겨진 동판이 서 있었다.

 

화려했던 희랍의 문화 한가운데서 선교 열의에 불탔던 바도 바오로의 열정을 기억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멋진 그리스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 무척 반가워하셨다.

그분은 젊은 시절에 선원으로 배를 타고 부산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여행지에서 한국에 대한 기억을 지닌 분을 만나는 것 또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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