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인순]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

시내가 혼잡해지고 교통이 마비될 것을 우려하여 안내자 마리나 씨는 우리의 일정을 조절하여

일찌감치 아테네시를 벗어났다.

우리가 탄 버스는 아테네시 외곽으로 빠져 팔리오 항구를 지나갔다.

버스가 달리는 도로 한편으로는 바다가 있고 반대편에는 선박왕 오나시스가 지은 오나시스 심장병원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세계적인 선박 왕이었던 오나시스는

시가 형태의 담배를 요즘 같은 작은 형태의 담배로 변형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두 개의 입’이라는 뜻의 이스트만을 보면서 달리던 차는 양편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서 있는 길을 지나

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들판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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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듯이 그리스에서는 사이프러스를 심었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사이프러스가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있는 조용한 시골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산등성이에는 가지를 짧게 자른 뽕나무가 재배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위에 눈이 쌓여 있었다. 아래로 펼쳐지는 들판에는 양 떼들이 푸른 풀을 뜯고 있었다.

모두 창밖에 펼쳐지는 한가롭고 아름다운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꽤 높은 지대까지 올라온 것 같은데 봄과 겨울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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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산에는 눈이 쌓여있었지만

아래쪽에는 꽃이 활짝 핀 나무들과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푸른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언덕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더니 붉은 기와지붕에 돌벽으로 지은 고풍스런 수도원이 나타났다.

수도원의 한쪽편은 협곡과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는 산길을 올라가 수도원 뒤편으로 내려와야 했다.

수도원 입구에는 바닥까지 가지가 늘어진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이곳은 11세기 초 비잔틴시대에 지어진 동방정교회 소속의 성 루카 수도원으로

아치형의 입구에는 주보성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수도원의 정식 이름은 ‘호시오스 루카스 수도원’ 으로 비잔틴 교회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의 수도원이라고 한다.

당시 그리스도교회에서 정착하기 시작한 교회건축양식에 따라

성당내부에는 예수 그리스도, 성모마리아, 성인들의 이미지 같은 구약과 신약의 이미지가

모자이크와 이콘으로 꾸며진 대표적인 양식의 성당이었다.

성 루카는 이 수도원의 설립자이며 예언능력을 가졌던 분으로 동방교회의 성인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루카복음서의 저자와는 다른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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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는 수많은 등과 향로, 그리고 아름다운 이콘과 모자이크로 가득 차 있었다.

높은 천장에 있는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경내에서 서로 부딪쳐 내리면서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경외심을 일으켰다.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태양 빛의 움직임에 따라 성당안의 모습은 다른 빛깔과 경건함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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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었다. 호기심에 그곳을 들여다보았더니

통로 한편 구석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네모난 긴 관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비단 천에 싸인 작고 검은 얼굴의 미라가 있었다. 순간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수도원 설립자인 성 루카의 유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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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맞은편에 가파른 바위 절벽에 잇대어 지은 오래된 건물은 수사님들의 거처일 것이다.

규모가 제법 큰 수도원이었는데 경내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11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부분적으로 수리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견고하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성당 밖으로 나와 뒤편으로 갔다. 그곳은 제법 널찍한 동굴 묘지였다.

바위를 파서 만든 굴의 벽에는 은은한 채색화로 그린 성경 이야기들이 있었다.

라자로를 일으키시는 예수님 같은 부활과 관련된 그림들이었던 것 같다.

동굴 안쪽으로 있는 돌관이 성 루카의 것인가 생각되었다.

그럼 위에 있는 성당 안에서 본 미이라는 무엇일까 약간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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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지금도 기도처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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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한 세상과 떨어져 자연 그대로, 옛 모습 그대로를 지닌 이름다운 이곳에서 기도하면

하느님을 더 잘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조용한 수도원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걷는데 작은 텃밭인지 정원에서 신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검은 모자와 검은 옷을 입은 정교회 수사님을 한 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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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벼랑 아래로 펼쳐지는 경관과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

자매들은 무성하게 늘어진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눈 덮인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며 움직일 줄 몰랐다.

지구 저편에 이렇듯 멋지고 고요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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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정문 앞에 있는 작은 기념품 판매소에서는 수도승 같은 느낌을 주는 남자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감탄을 연발하는 우리를 말 없는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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