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30616 연중 제1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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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6월16일 연중 제11주일 복음묵상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루카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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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보자.

 

1. 죄인이라 불렸던 여인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으로 식사에 초대되어 오신다는 소리가 들린다.

꼭 만나 뵙고 싶다.

죄인으로 취급 받으며 살아온 지 오래되었다.

사람들의 경멸의 눈을 의식할 여유조차 없다.

그만큼 나는 간절하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준비했던 향유를 들고 그분 발치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신다.

눈물로 적시어 발을 닦을 정도라면 그 양이 어느 정도일까?

어느 정도의 슬픔에 어느 정도의 흐느낌이어야 발을 적시고 닦을 정도의 눈물이 될까?

그 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게다.

이를 회개라고 한다.

이를 참된 뉘우침이라고 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체험해야 할 눈물이다.

죄의 크기는 의미가 없다.

그분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참된 뉘우침만이 의미가 있다.

 

2. 스스로 잘살고 있다고 믿었던 바리사이 남자

 

하도 묘한 인물이라는 소문에 예수라는 인물이 궁금했다.

식사라도 하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전개된다.

정말 형편없이 죄 속에 살고 있던 여자가 들어온 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그 여자가 예수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눈물로 그의 발을 닦아주고 있다.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까지 바르고 있다.

예수라는 자는 처음부터 그녀의 행동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깊은 눈동자로 그녀의 모든 행동을 내려보고 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슬픈 이야기지만, 이 바리사이가 품고 있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서도 발견되고 만다.

편견이라는 것이다.

그 여인은 죄인이었기에 항상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었다.

그 여인에게서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닫아놓고 보려 하지 않았던 꽉 막힌 편견이었다.

그토록 자신이 인용하여 떠들던 성서에 자주 나오는 ‘뉘우침’이라는 말이 그녀하고는 상관없다고 믿어버렸다.

 

우리는 어떠한가?

늘 경계 해야 한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것이 편견이 아닌가를 늘 경계해야만 한다.

 

3. 여인과 바리사이를 바라보는 예수님

 

여인도 바리사이도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다.

여인은 자신의 죄를 통렬하게 참회하고 눈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여인이 걸어왔던 삶이 보인다.

상처투성이인 여인, 결국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그녀가 기특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바리사이 남자가 식사에 초대해주었다.

함께 식탁을 마주하자는 이야기는 나를 알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리도 막혀있는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고 있구나.

안타깝구나.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

너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꼭 진짜 하느님을 만나기를 바란다.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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