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40330 사순 제 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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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3월30일 사순 제 4주일 복음묵상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요한 9,2)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 된 것이다.”(요한 9,3)

 

[하나] 장애(障碍)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어려서도 주위에서 만나게 되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보면 장애를 허락하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한테 들은 하느님은 항상 사랑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지요.

요즘의 나이가 되어서도 장애를 가진 이들을 보면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바라보는 그들에 대한 마음하고 지금의 마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있는 사지 멀쩡한 이들보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오히려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는 마음과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에서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었고, 순수한 웃음과 눈물을 보이는 이들이었고,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아픔을 줄 수 없는 이들이며,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죄는 건강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이들이 만들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삶의 유한성을 생각할 때, 어쩌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맑은 영혼들은 하느님께서 죄지을 기회조차 허락하시지 않은 축복받은 영혼들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 된 것이다.”(요한 9,3)

 

[둘] 장애(障碍)의 의미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신체나 정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분명 장애는 불편과 곤란을 초래합니다.

여기서 잠시 ‘영성적 장애’에 대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넓은 의미로 마음의 장애라는 표현을 써도 될 듯 합니다.

 

서글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 옳음을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옳지 못한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부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는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장애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죄의 결과로 보아도 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죄가 가져다 준 상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그 장애를 치유 받는 길은 장애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깨끗하게 인정하고 그 장애와 싸우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적 삶임을 믿습니다.

 

사진: 박용기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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