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케치북

 

[김대열] 2013 삼위일체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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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15일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묵상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3,17)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도 하느님이시고, 성자도 하느님이시고, 성령도 하느님이신데,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이지요.

이것을 모르는 신자는 없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이 쉽게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고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 냈지만, 결국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결론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셈법이나 논리로는 맞아떨어지는 답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성서와 교회의 체험을 통해서 얻어진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논리를 넘어서는 신비이고 ‘믿을 교리’인 것이지요.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뵌 적도 없고, 2천년 전의 예수님을 뵌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한 정확한 묘사도 불가능합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낳으셨다는 것을 믿듯이 그냥 믿으십시오.

성체를 예수님의 몸으로 굳게 믿듯이 그냥 믿으십시오.

교회의 유구한 역사를 보아서라도 믿으십시오.

언젠가 우리가 이 삶을 마감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애초부터 이해 못할 것으로 정해진 것을 이해하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적어도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만을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원하는 삶을 살면은 됩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닙니다.

신앙은 논리적일 수만도 없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성인들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삶은 바로 이러한 믿음 안에서 가능했음을 교회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순교자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이 진실하고 아름답다 믿는다면, 그 삶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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