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하느님의 얼굴과 십자가
그 사람을 앎에는 차원이 있다. 그 사람의 이름만 알거나 얼굴을 기억한다. 그의 성격과 취향을 알고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과 꿈을 안다. 그에 대해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그 사람 자체를 알 수는 없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온전히 알 수 있겠나? 그 사람을 앎은 그의 이미지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느님의 모상, 이미지(콜로 1,15)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아버지 하느님을 알리고 또 보여주셨다.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느님을 본 것이었다(요한 14,9).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하느님의 사진이나 초상화가 아니라 그분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큰 자비와 무한한 사랑이다.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찾지 못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에야 비로소 그분을 알고 또 믿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스승님을 알아본 것도 예전의 그 얼굴이 아니라 그분이 보여주셨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모르는 바오로 사도가 주님을 만났다는 증언(사도 15,8)을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님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역시 십자가 위의 죽음이다. 그것은 억울한 형벌이 아니라 주님의 삶을 종합하고 요약한다. 그것은 희생, 사랑, 내어줌이고, 거짓자아의 죽음과 동시에 참자아의 탄생이다. 십자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정체를 나타내는 명백한 표지이다. 그분의 제자들도 주님을 따라 십자가 위에서 생을 완성했다. 우리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예수님, 참된 삶을 보여주셨으니 저희는 주님을 믿고 따릅니다. 주님을 뵌 적이 없다고 하지만 당신을 직접 뵙고도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도 저희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을 만나 삶을 바꾸었던 것처럼 저희도 회개하여 복음을 믿고 주님을 따르게 도와주소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당신 아드님의 얼굴을 보여주시어 제 십자가가 짐이 아니라 구원의 도구임을 깨닫게 도와주시고 영원한 기쁨 속에서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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