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3월 7일(사순 제3주일) 되돌아가기
코로나 이후 시대는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하는 소통이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많이 동의하고 벌써 그렇게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예를 들어 화상회의가 처음엔 어색했지만, 막상 해보니 회의 전에 준비만 잘하면 토론과 결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있어서 점점 핵심과 본질에 더 마음을 두게 될 것 같다.
형식이나 부수적인 것들은 내용과 본질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중요하게 되어버린 것들이 많다. 결혼식은 축의금과 피로연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과 합의가, 그리고 장례식은 부의금과 장례 예법이 아니라 애도와 위로가 그 본질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아들까지 내어주실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무한한 자비이다. 그 외의 것들은 있으면 좋고 편리하지만 없다고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미사를 비롯한 성사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머지않아 그리될 것이니 조금만 더 참는다.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셨다. 누가 봐도 그건 폭력이고 기물 파괴 그리고 영업방해(?)의 범죄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성전 관계자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고 구금하지 못했다. 고작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요한 2,18)”라고 물은 게 전부다. 그들도 그런 관행들이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곳은 기도하는 집이지 장사하는 시장이 아닌 줄 잘 알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성전세를 바칠 수 있게 유다인의 돈으로 환전해주고 예물 봉헌을 위한 동물들을 판매하며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의가 점점 변질되어 수익 창출의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유혹이다. 예수님은 그걸 아셨다.
몇 달만 고생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1년이 넘었다.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새로운 일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개신교의 대형교회들의 공개된 비밀처럼 모두가 알고 있던 어두운 면이 사실이 됐고, 어찌하지 못하던 사이비 종교들이 세상에 다 드러나 버렸다. 우리도 도전을 받고 있다. 쉽지 않지만,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가 인다. 규칙 관례 형식만 강조되고 가장 작은 이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 섬기지 않았던 겉치레 신앙은 사라지고 참 신앙과 실천이 우리를 이끌어갈 것 같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고 또 그래야 한다.
수도회 전체가 변하는 중이다.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변화라기보다는 되돌아가며 회복하는 중이다. 하느님이 교회를 통해 수도회에 맡기신 사명의 본질로 돌아가는 중이다. 당연한데도 두려움, 저항, 갈등이 있다. 구원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예수님이 그 길을 열어 놓으셨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뵌 후에야 스승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다고 믿는다(1코린 1,25). 본질로 되돌아가는 길은 가깝고도 참 먼 길인 것 같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아무리 버팅기고 저항해도 교회는 변하고 수도회는 설립목적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주님, 아닌 줄 알지만, 남들이 다 그러니까 내키지 않아도 했던 말과 행동들을 이제는 과감하게 버립니다. 한결 가뿐하고 든든하지만, 이 마음과 지향을 계속 이어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님 뒤만 따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의 뜻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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