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남은 자들’의 귀환(연중 4주일)

이종훈

‘남은 자들’의 귀환(연중 4주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교를 가진 인구가 과거 10년 전에 비해 10%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10대 20대 젊은이들 중 약 70%는 종교가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복지가 증가하면서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약화된 것이고, 젊은이들은 종교가 자신이 처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탈종교화와 세속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에 대해 종교인들은 기성종교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성소자들은 급감했고, 종교인들을 윤리적인 일탈 소식은 이제 그리 놀랄만한 것이 되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며, 수도원 내에서도 자신의 서원생활을 포기하는 형제들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이런 분석 자료들과 수도생활의 현실들로 마음이 우울해졌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종교는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인가?’, ‘나는 수도생활의 막차를 탄 것인가?’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아직도 성당 같은데 다니세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생겨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속화에 따라 종교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변하거나 축소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신학자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은 어두운 곳에 있는 것들을 밝은 곳으로 드러내놓는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수도원들이 많이 운영했던 고아원, 양로원, 학교, 병원들을 이제는 사회와 국가가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더 이상 어느 특정 단체들의 선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라는 보편적인 인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사회정의, 환경보호와 관련된 일들도 종교인들의 고유한 몫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공동체적인 일들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제도나 이념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종교의 본질적이고 고유한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그 이전에 종교란 무엇인지 물어야 하겠습니다. 종교는 신, 절대자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것처럼,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즉, 가치, 정의, 진실, 진리, 희생, 사랑 등을 잊어버리게 되면 다른 동물들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종교의 다른 사회적 역할과 기능들이 모두 없어져도 이것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주일미사 참례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어기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해소에서 가장 많으 들어서 흔한(?) 죄가 또한 이것이기도 하고, 이것은 성당으로 향하는 발길이 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성당에서 멀어졌다고 고해성사를 청하는 분에게 이렇게 훈계를 합니다. ‘주일미사 참례의무를 버거운 짐이라고 여기지 마세요. 그것을 자신의 구원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인 장치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네요. 이를 풀어 다시 말하면, ‘나의 영혼을 위해서 1주일에 한두 시간정도는 할애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교회의 애정 어린 부탁입니다. 인간이 영혼을 잃어버리면 모두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미사 참례와 기도는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아직도 성당 같은데 다니세요?’ ‘기도보다는 단학선원이나 요가학원 같은 곳에 다니며 몸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평화롭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앞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비관적으로 저는 빈 수도원 건물 지키며 늙어갈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 열광하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예수님께 실망하며 그분을 버리고 돌아갔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이에 시몬 베드로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68절).” 베드로의 그 고백이 ‘아직도 성당 같은데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주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구약의 ‘남은 자들’ 혹은 ‘아나빔(가난한 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을 겁니다. 유배지에서 신앙을 버리고 그 나라의 신 즉 풍요를 권장하는 신을 섬기라는 권력의 협박에도 끝까지 그들의 신앙을 지켰던 이들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하셨던 약속대로 마침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게다가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수난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그분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이 땅 위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믿으며 끝까지 남아 있도록 우리의 믿음이 더욱 순수해지고 굳건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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