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사랑하며 사랑받기 (연중 5주일)

이종훈

사랑하며 사랑받기 (연중 5주일)

 

지난 설에 가족 친척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청년이 된 조카들도 만났습니다. 조카들이 중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어떻게 지내는지, 꿈은 뭔지 이러저러한 것들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 졸업, 취업, 결혼, 출산 등 가장 기본적이고 누구나 다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을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 조카들도 정말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많은 청년들과 같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청년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어 울고 싶을 지경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게다가 요즘 우리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직무를 받은 사제로서 이런 분들에게 과연 무엇이 복음,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지 고민스럽습니다. 이렇게 고민하다보면 신앙이 사치스럽고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하는 분들에게 그리스도의 계명, 하느님의 말씀은 복음이 아니라 마음에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얹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분명 그럴 리가 없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주일미사 참례 의무, 고해성사, 교무금, 주일헌금, 봉사활동 모두가 짐스러워지는 느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오랜 시간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치욕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유배생활 전에는 경고성 메시지를, 유배 중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들은 정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 온 기쁨도 잠시 뿐이었고 그들은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구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과 만나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느님은 또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이사 58, 7-8).” 종교와 국가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그 당시 율법과 예배행위가 곧 그들이 지켜야 하는 국법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집과 살림살이 등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 율법준수는 짐스러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아 주는 빛나는 삶으로 하느님을 세상에 알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정성된 마음 없이 형식적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을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진정한 단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식탁에서 한 형제가 로또라도 맞았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여기저기 자선과 기부하면 정작 자신을 위해 쓸 돈이 빠듯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되는 줄 알지만, 딱한 사정을 듣고 보면 자꾸 그렇게 하게 돼버린다고 했습니다. 수도자로서 절제의 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 형제의 마음씀씀이는 결코 절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앞가림하기도 버거운 백성에게 하느님은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고 명령하셨지만, 그 명령 안에는 그렇게 실천하는 백성들을 반드시 돌보아 주시고 그들의 상처 또한 치유 받을 것이라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웃을 도와주며 하느님의 도움을 받고, 이웃을 사랑하여 상처를 치유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그 명령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살기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모르는 체 하지 않습니다. 나의 상처로 나도 힘들지만, 저 사람도 나처럼 그의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위로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대해줌으로써 나의 상처는 치료받고 또 그렇게 위로받습니다. 사랑하며 사랑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참 하느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이 그들을 다스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알아서 마련해주신다고 믿습니다(마태 6,33). 이것을 글자 그대로 믿음이 너무 순진해서 위험해보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신앙은 부담스러운 마음의 짐이고, 교회는 쓸데없는 죄책감만 만들어내는 거추장스러운 조직일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금수저를 입에 물고 궁궐에서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반대로 그분은 낮은 자보다 더 낮은 자로서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을 섬기셨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봉헌하셨습니다. 당신의 말씀과 약속을 보증이라도 하듯이 사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3.14.1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음식을 썩지 않게도 하지만, 그 음식을 맛나게도 합니다. 그리고 빛은 주변의 사람, 사물들이 드러나게 합니다. 즉 그것들의 존재가치를 부여해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마디로 이웃들을 살맛나게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느님이 챙겨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팍팍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를 나에게 다오. 그러면 나를 너에게 주겠다. 너는 너를 걱정하지 말라. 너는 내가 책임진다. 다만 이웃 안에 있는 나를 찾아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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