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2월 14일 연민

이종훈

2월 14일 연민

 

예수님은 사천 명,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런데 복음서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설명이 없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요술을 부려 빵이 펑펑 솟아나게 하셨던 것 같지는 않다. 만일 그랬다면 제자들이 그 일을 잊어버렸을 리 없을 것이다. 그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빵을 챙겨가는 것을 잊었더라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마태 8,16).

 

만화처럼 빵이 생겨난 것이 아니지만 거기 모인 군중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었을 것이다. 남은 빵조각들이 열두 광주리,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을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이라고 여기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운 좋게 또는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해석할 것이다. 아마도 제자들은 후자의 사람들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사건들, 그 기적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 기적의 시작은 예수님의 연민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가난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사실 그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을 그 기적의 현장에 있게 하시려고 그러셨을 것이다. 한 사람의 깊은 연민이 그런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기적은 빵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차고 넘치게 먹은 것이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내어 놓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남을 정도로 풍요로웠다는 것이다. 

 

빵이 솟아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는 모든 일마다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는 공덕을 쌓았거나 그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는 철저히 가난하다. 그분의 연민이 만든 기적의 현장에 제자들의 가난을 도구로 쓰셨지만, 역시 기적의 원인은 그분의 연민이었다. 나의 가난이 필요하실 리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내어 놓는 것은 나도 그 연민의 기적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싶어서리라.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분노, 실망, 절망 속에서도 연민의 정은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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