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하느님 위로해드리기(연중 7주일, 2월 19일)

이종훈

하느님 위로해드리기(연중 7주일, 2월 19일)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보도사진재단이 선정한 2016년 올해의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작년 한 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사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몇몇 사진들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것들을 보는 순간 머리와 가슴을 둔기로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내전으로 고통 받는 난민들과 군인들의 습격에 겁에 질린 어린이들의 표정, 인간의 탐욕으로 몸살을 앓는 자연과 야생 동물들을 보면서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충격은 분노로, 분노는 다시 슬픔으로 바뀌었습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을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곧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본래 사람은 그런 동물이었던가?’ 그 사진들을 본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충격과 슬픔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며칠 동안 전례 독서로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그리고 노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류의 죄와 그를 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악이 많아진 세상을 내려다보시며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창세 6,5).” 그래서 그 중 당신 마음에 든 유일한 사람이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동물들 일부만 따로 떼어 방주에 담아 두시고는 그 나머지는 모두 대홍수로 쓸어버리셨습니다. 하느님의 진노는 정당했고, 사람들은 벌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잘 다스려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 일이 다 끝난 다음 노아가 바치는 향기로운 제물을 받으시고는 의노를 가라 앉히셨고 아마 당신 하신 일을 또 후회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창세 8,21-22).” 하느님께서는 영문도 모른 채 큰물에 쓸려 내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습니다. 비록 당신의 결정이 합당하지만 그 모습이 안쓰러우셨을 것입니다. 거기에 사랑하는 노아의 제사에 당신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요나 4,2)”이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하느님이 사라지면 가려졌던 그 폭력성과 잔혹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람은 본시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짐승보다 더 못한 동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 같습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 이후로도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다짐은 죄악을 벌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창세 9,5-6).”

 

보도사진들이 보여주듯이 세상이 이렇게 험악한데, 세상이 벌을 받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시기 때문이겠고, 아마 세상 곳곳에 노아와 같은 사람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매일 당신께 봉헌되는 그 어떤 제물보다 향기로운 아드님의 제사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아 홍수에 쓸려가며 울부짖던 사람들을 가련히 여기셨던 하느님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당신을 모욕하며 비아냥되던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시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청하셨습니다. 노아의 향기로운 제사에 당신의 마음이 누그러지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목숨을 걸고 바치는 청원은 노아의 제물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이 향기로웠을 제사에 하느님은 큰 위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노아와 같은 사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는 사람입니다. 이 험악한 세상을 바꿀 능력은 없을지 모르지만, 무너져가는 하느님의 마음을 위로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까지 사랑하셔서 완전히 자유로우셨기에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주셨고 몸소 증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인 우리들도 당신처럼 완전해지라고 명하셨습니다(마태 5,48). 그것은 아무 결점도 없고, 죄를 저지르거나 실수도 하지 않는 컴퓨터나 기계 같은 사람이 되라는 명령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작은 사랑의 확장이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하여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일 겁니다. 완전한 인간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불의한 세상에 화나고 실망하며 그런 사람들에게 할 말도 많지만, 그 분노의 에너지와 그 시간들을 하느님 마음을 위로하는 데에 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속상하면 하느님은 그 여린 마음은 얼마나 더 아프실지 헤아리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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