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자기비움 그리고 진실과 정의(사순 1주일, 3월 5일)

이종훈

자기비움 그리고 진실과 정의(사순 1주일, 3월 5일)

 

매년 사순시기를 시작하면 극기와 보속으로 작은 결심을 하지만, 그 결심은 며칠 못가서 거의 언제나 무너집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실패에 많이 속상해하거나 저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그런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패해서 잠시 부끄럽고 속상하지만, 다시 결심하고 또 시작합니다. 실패가 없음이 아니라 자기부정을 통해 자신을 비우는 훈련이 그 결심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뱀의 한 마디에 창조주 하느님과의 약속을 그렇게도 쉽게 저버렸고 서로에게 그 책임을 떠 넘겼던 것처럼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소담스럽게 보였던 것은 아마도 그것을 따먹으면 그들도 하느님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창세 3,5-6). 하느님처럼 되면 진흙인형인 사람이 어떻게 변하기에 그 유혹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마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 욕망은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제 안에서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진실을 아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것이 세상에 밝혀지는 것이 부끄럽고 벌이 두려워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률가가 아닌 우리가 들어도 이상한 주장과 행동들을 버젓이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많이 배우고 존경받을만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거기에 앞장서고 있어서 더 답답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진실이고 또 정의라고 우기는 것 같습니다. 진실과 정의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 된 것입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고, 힘이 곧 질서이고 정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 그런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러고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대립의 그 겉모양은 같은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위치가 서로 바뀐 것 같습니다. 과거 소위 진보계열의 사람들이 서 있던 자리에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이 서 있는 모양새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이 완전하게 밝혀지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 모두는 그런 바람을 가져야합니다. 그 길의 첫 발자국은 자기 비움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씌워 준 색안경과 귀마개를 벗고 보기 싫은 것도 보고, 듣기 싫은 것도 들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잠시 한 쪽으로 치워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악하지 않고 약합니다. 특히 흙의 먼지로 빚은 육체는(창세 2,7) 언제나 자신의 이익과 가시적인 성공만을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자신이 전지전능하고 영원히 사는 하느님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그 가운데 하느님의 숨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숨은 진흙이 육체가 되게 하고, 그 육체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육체에 비해 숨은 참 작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활동합니다. 비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숨이 활동하지 않으면 인간은 다시 흙의 먼지로 돌아가 버립니다. 인류의 조상이 뱀의 유혹에 창조주의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처럼, 우리도 이 하느님의 숨을 잊어버리면 자기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 욕망 안에서는 진실과 정의 그리고 거짓과 불의가 서로 자리를 맞바꾸게 됩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유혹과 맞서 싸워 이기지 못합니다.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지닌 우리는 유혹을 받으면 유혹자의 말이 진실이 되고 정의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유혹자는 결코 거짓과 불의를 따르라고 우리를 끌어당기지 않습니다. 하느님 반대편에 서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진실, 정의, 하느님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주장합니다. 예수님 유혹할 때도 생명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이용했습니다. 그런 유혹은 광야에서만 아니라 예수님 공생활 중에 계속 되었을 것이고, 특히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마 못할 겁니다. 우리는 그것과 맞서지 말고 그분 뒤에 숨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유혹자를 물리쳐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세상 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을 꺾고 창을 부러뜨리시며 병거를 불에 살라 버리시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 나는 민족들 위에 드높이 있노라, 세상 위에 드높이 있노라!(시편 46,10-11).’”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를 빚어 만드신 하느님을 기억하고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부를 수 있으니 더 이상 비겁하고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진리가 아니지만 진실과 정의를 바랄 수는 있습니다. 내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실과 정의가 아닐 수 있다고 자신의 고집을 잠시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이끌어 가시고 유혹자를 물리쳐주실 겁니다, 그 때 광야에서처럼 그리고 겟세마니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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