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새로운 길(사순 2주일, 3월 12일)

이종훈

새로운 길(사순 2주일, 3월 12일)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데리고 산으로 가셔서 그들에게 거룩하게 변모하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습니다(마태 17,3).” 예수님은 인성으로 가려져 있던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은 장차 예루살렘에서 당신께서 겪으실 수난과 죽음을 모두 견디어내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실 때(마태 17,9)”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아 내려 올 때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돼서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던 것처럼(탈출 34,30), 예수님의 그 모습을 본 세 제자들도 그랬을 겁니다. 그것은 위협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을 마주한 경외심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겁니다. 분명히 보고 있는데도 믿어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하느님의 사람들이며 하늘나라의 영적인 존재들인데 그들이 땅으로 내려와 눈앞에 있고 예수님은 그들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땅으로 내려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 17,4).” 베드로가 한 말은 이스라엘 민족의 초막절 축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초막절은 추수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뭇가지와 풀로 초막을 지어 거기서 일주일 동안 지내는 축제로서(레위 23,42) 추수감사제나 우리 추석 명절과 비슷합니다. 감사와 기쁨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엉성한 초막은 이집트를 탈출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천막생활 하던 때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땅, 하느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추수감사제의 기쁨과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때였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도 부족했고, 게다가 모세와 그 지도부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며 하느님을 배반해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시간이 하느님과 친밀해지는 기간이어서 이를 두고 밀월여행, 신혼여행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만큼 하느님과는 친밀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후에는 그 때가 가장 행복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후대에도 이 시간을 기억하게 했습니다(레위 23,43).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고 합니다(루카 9,33). 놀라고 두렵고 당황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자신의 본심이 툭 튀어나왔을 지도 모릅니다. 초막절을 지내는 이유는 광야에서 지낸 40년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혼란과 도전 속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지, 아직도 노예생활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않았음을 발견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자신의 민낯과 밑바닥이 다 드러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진정한 하느님과의 친교, 화해가 이루어지는 은혜로운 때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과정은 잊어버리고 그 결과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는 익숙하고 안전한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 약속의 땅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도 역시 그 여행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과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래서 더 강해졌고 하느님을 더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요즘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남을 이번 결정을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억울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나든 이런 혼란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정치인들, 종교지도자들 모두 거의 한 목소리로 이번 결정에 승복하고 서로를 보듬고 화해 화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열은 비구원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하느님의 백성들답게 화해와 화합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은 나와 왜 이렇게 다른지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하셨고, 당신 친히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모욕하고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7,48).”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죽기까지 하느님을 신뢰하시고 사랑하셔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씀을 잘 들어야 하겠습니다(마태 17,5). 챙겨야 할 것은 잘 챙기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길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갈 길은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라서 어색하고 되돌아 나오고 싶은 유혹도 받을 겁니다. 그 때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길,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셨던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며 용기를 내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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