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물 좀 주소(사순 3주일)

이종훈

며칠 전에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만원 지하철에서 일터로 가는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을 만났습니다. 짐짝처럼 어디론가 실려 가면서도 아무도 불평 한 마디 없는 모습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머리도 채 말리지 못한 사람들, 피곤한지 그런 와중에서도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익숙하고 당연하겠지만, 고요한 새벽에 홀로 기도하며 성찬례로 하루를 여는 저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모습을 목격하니

 

저의 이런 삶이 감사하기도 하고 또 동시에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요즘 발표되는 모든 사회 통계 지표들은 정말 우리를 더 우울하게 합니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경기, 높아지는 실업률, 낮은 출산율에 대통령 탄핵과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고, 이런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전쟁위협 등, 어느 소식 하나 우리를 기쁘게 해주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희망을 말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이지만 예수님도 우리처럼 사셨습니다. 삶의 모습은 많이 달랐겠지만 먹고 살기 위해 겪어야하는 수고스러움은 오늘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때가 차자 그분은 새로운 삶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그리고 세상 사람들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당신 본연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일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는 것은 복음서 곳곳에서 찾을 수 있고, 그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그것을 큰 소리로 증언합니다. 그렇게 복음 전도 여행을 하시던 중에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먼 길을 걸어오신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고, 물을 길으러 나온 그 여인은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 자리에 놀러 나온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물을 길으러 왔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가정도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섯 명의 남자와 함께 살았지만 이웃 친지들의 축복 속에 꾸민 가정생활이 아니었고 지금 그 남자도 그랬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여인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이 됩니다.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녀의 삶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힘겹고 지루한 일상 중의 하나인 물 긷는 우물가에서 그녀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종족과는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유다인이었습니다. 어색하고 불안한 침묵이 흘렀을 겁니다.

 

그 어색하고 불안한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예수님이셨습니다. 두 종족 간의 적대감이나 남자와 여자가 단 둘이 한 자리에 있는 어색함보다는 당신의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 해소가 더 급했습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 하지만 그 말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 여인이 다른 어떤 곳에서,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갈증은 물 한 바가지면 충분히 해소되지만 그 여인의 그 갈증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그리고 도대체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갈증이 시작된 지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어쩌면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려서 그 갈증에 무감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으니까 자신도 그 갈증의 물구덩이에서 그렇게 저렇게 맴돌고 있었을 것입니다. 체념이었습니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그런 메마른 마음을 읽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이미 만원 지하철 속에서, 걸어가면서도 눈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도 그런 마음을 만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녀와 대화는 거의 동문서답 수준입니다. 같은 물을 두고 예수님과 그 여인은 다른 시각에서, 다른 차원에서 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우물물로 해소될 수 없는 갈증, 그녀가 체념하고 잊어버린, 아니 잊어버리고 싶은 삶의 갈증을 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물이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지난 삶과 세상사를 뒤돌아보면 솔직히 편안하고 문제나 골칫거리가 없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아무 문제가 없으면 언제 어떤 사건이 또 터질까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면 그 갈증이 해소될까요? 아닐 겁니다. 그 이유는 그런 시절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생 자체가 갈증이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갈증과 그리움은 돈과 권력으로 해소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진다고 해도 그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창조주 하느님,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을 만나 그분 안에 들어가고 그분과 하나가 될 때에만 없어집니다. 그녀는 바로 그분을 만났고, 그 만남이 준 새 희망과 기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분을 소개했습니다. 그 여인은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자신의 물동이도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서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28절). 그리고 그들은 그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증언 때문이 아니라 그분을 직접 뵈었기 때문이었습니다(42절).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에 그 마을에서 이틀을 머무르셨지만,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그 이후 그 여인은 물을 길으러 그 우물가에 또 나갔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일상을 살아갔을 겁니다. 그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그 일상을 대하는 마음과 시각은 분명 달라졌을 겁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우리의 갈증과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이 바뀌면 세상도 바뀔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시각이 바뀌면 그 지루하고 힘겨운 일상도 다르게 보일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광야에서 목마르다고 모세에게 불평을 쏟아냈고, 하느님은 그들의 정당한 불평을 듣고 물을 주셨습니다. 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모세의 능력이 아니라 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탈출 17,6).” 이제는 우리 중에 모세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은 즉시 달려와 그 물을, 당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일상의 지루함과 세상이 주는 실망으로 체념이 일상이 되어버려 딱딱하게 굳어버린 바위 같은 우리 마음을 맑고 마르지 않는 샘으로 바꾸어 주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회이고 행운이 됩니다. 과거 참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탁한 음성으로 들려주었던 한 가수의 노래가사가 생각납니다. ‘물 좀 주소. 목마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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