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진실의 빛(사순 4주일, 3월 26일)

이종훈

진실의 빛(사순 4주일, 3월 26일)

 

얼마 전에 어린이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매우 오랜 만에 어린이들, 그것도 유치원생들과 함께 하는 미사라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일반 미사경문과는 약간 다른 어린이 미사경문을 따라가는 것도 어색했지만, 강론 준비는 더욱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미사에 참례하고 목청껏 성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괜한 걱정을 했던 제가 부끄러웠고,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영성체 시간에 강복을 받기 위해 모두가 줄지어 나오고 아이들 하나하나를 가까이서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앙증맞은 머리핀을 꽂은 머리와 잘 차려입은 옷을 보니 부모님들이 이 아이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 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명 한 명 머리에 손을 얹으며 강복해주는데, 이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도 부모들의 눈에는 지금 이 모습으로 보일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아이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다는 것은 부모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차가운 물속에 3년 동안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떠올랐습니다. 유가족은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까지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족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에 고통을 더했던 것은 주위 일부 사람들의 모욕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언행이었습니다. 수도자들과 사제들이 진실을 덮어버리려는 강력한 어둠의 세력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저녁에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비난하는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한하셨을 때에 그렇게 환호하며 반기던 이들이었지만 그분의 말씀은 듣지 않습니다. ‘고통 앞에서는 중립은 없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의 그런 행동이 정치적으로 혼란과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음을 아셨지만, 그분의 신앙과 양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대사제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단순하고 명료하게 가르쳤습니다.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분은 아셨고, 그들 앞에서 목자가 해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요한 9,4).

 

너무나 많은 질문과 의심들이 남아 있습니다. 세월호에 얽힌 수많은 추측과 소문들, 어떤 것은 정말로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어둠의 힘이 진실을 덮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습니다. 어둠은 한 번도 빛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밝히고 그 빛을 따라 생명의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빛보다는 어둠을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악행을 감추려 하기 때문입니다(요한 3,19-20). 그리고 언제나 겉모양만 보려고 합니다(1사무 16,7). 악행으로 이루어 놓은 거짓업적들이 무너질까 걱정해서, 그 악행의 비밀을 또 다른 악행으로 덮으려 합니다. 이제 덮으려고 했던 그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이 내려오자 세월호가 올라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합니다. 누군가 그토록 숨기고 싶은 비밀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그저 떠도는 이야기이기를 바랍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태생 맹인은 자신이 치료해준 분이 어떤 분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의 추궁을 받는 과정에서, 또 명백한 치유 사실을 억지로 부정하려는 그들을 보면서 그는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요한 9,25).” 그가 바리사이들의 도전과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그분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그의 명백한 체험과 진실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식이 없는 저도 그분들의 고통을 아직도 나누고 있는데, 세상의 다른 부모들이 그들의 고통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설령 세상은 그렇게 말해도 빛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면 안 됩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하느님도 그들에게 그 고통을 이제 그만 잊으라고, 잘 참아 받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는지 끝까지 밝혀야 합니다. 그러면 유가족과 심적인 고통을 받는 생존자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 세상은 더 밝아질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진실을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번호 제목 날짜
1733 [이종훈] 나해 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 행복한 사람들(+MP3) 2021-11-01
1732 [이종훈] 나해 10월 31일 하느님과 소통하는 사제직무(+MP3) 2021-10-31
1731 [이종훈] 나해 10월 30일 내려가자(+MP3) 2021-10-30
1730 [이종훈] 나해 10월 29일 마음을 더 넓게, 사랑을 더 깊게(+MP3) 2021-10-29
1729 [이종훈] 나해 10월 28일(성 시몬과 성 타대오 사도 축일) 복종하고 빼앗기는 마음(+MP3) 2021-10-28
1728 [이종훈] 나해 10월 27일 부르심(+MP3) 2021-10-27
1727 [이종훈] 나해 10월 26일 바람에 맡기기(+MP3) 2021-10-26
1726 [이종훈] 나해 10월 25일 완성되는 날(+MP3) 2021-10-25
1725 [이종훈] 나해 10월 24일(연중 제30주일 전교주일) 십자가의 승리(+MP3) 2021-10-24
1724 [이종훈] 나해 10월 23일 회개와 생명(+MP3) 2021-10-23
1723 [이종훈] 나해 10월 22일 선한 영향력(+MP3) 2021-10-22
1722 [이종훈] 나해 10월 21일 사랑의 성체(+MP3) 2021-10-21
1721 [이종훈] 나해 10월 20일 섬김과 신뢰(+MP3) 2021-10-20
1720 [이종훈] 나해 10월 19일 잘 기다리기(+MP3) 2021-10-19
1719 [이종훈] 나해 10월 18일(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평화를 위한 음식(+MP3) 2021-10-18
1718 [이종훈] 나해 10월 17일(연중 제29주일) 복음의 기쁨(+MP3) 2021-10-17
1717 [이종훈] 10월 16일(성 제라도 마옐라 축일) 더 멀리 보게 하시는 성령(+MP3) 2021-10-16
1716 [이종훈] 나해 10월 15일(예수의 성녀 데레사 기념일) 믿는 것 말고는 (+MP3) 2021-10-15
1715 [이종훈] 나해 10월 14일 진실만 말하기(+MP3) 2021-10-14
1714 [이종훈] 나해 10월 13일 자유(+MP3) 2021-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