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주님 만찬 성 목요일 (4월 13일, 몸)

이종훈

주님 만찬 성 목요일 (4월 13일, 몸)

 

온전히 묵상에만 열중하기 안전한 시간은 새벽이다. 성삼일 첫 날, 여느 때보다 더 열심히 복음과 전례의 의미에 대해서 묵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유선전화 벨이 울렸다. 이런 전화는 좋지 않은 소식을 알리는 경우가 많아 살짝 긴장을 하고 받았다. 판공성사를 할 수 있느냐는 한 신자였다. 성 목요일 전례는 다른 신부님이 주례하실 거라서 잘 모르겠다고 하고 끊었다. 나쁜 소식이 아니라 안심하면서도 괜히 긴장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언짢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묵상에 열중하려했는데, 전화 대화가 떠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그런 걸로 전화를 걸다니 참 예의도 없네. 그 많은 날 동안 뭐하다가 이제야 …’ 내 심판은 옳았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 이상하게 그 분의 마음과 상황이 저절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 아침미사에 와서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했는데, 성당 문이 닫혀 있으니 당황하셨구나. 지금 성사 드릴까요? 이따가 아침 드시고 다시 오세요. …’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크게 후회가 됐다.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무슨 벼슬자리에 앉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다시 그분께 연락드리고 싶지만 번호를 모르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주님께 용서를 청하 수밖에.

 

예수님은 사람들을 참 좋아하셨다. 사랑보다는 좋아하셨다는 말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분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셨다, 그들의 종처럼. 마치 사람들이 요구할 때를 준비하고 기다리셨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위반한다고 고발하며 싫어했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좋아했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우선이었지만, 예수님에게는 사랑이, 사람이 우선이었다. 사랑은 율법을 완성한다(로마 13,10). 그러니 언제나 사랑이 율법에 우선해야 한다. 그렇게 살았다면 이른 아침 무례한 그 전화에도 친절하게 그분의 요구를 넘어 그분이 참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응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두 사람 모두 행복했을 것이다. 참 속상하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만큼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과 함께 지내면서 깨끗해졌다(10절). 마지막으로 더러워진 발만 씻으면 완전히 깨끗해지는 것이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14-15절).”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깨끗해진 마음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이웃을 보고, 그 이웃에게서 더러운 곳이 보이면 씻어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가셨지만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몸을 남겨주셨다. 제자들을 당신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해주셨던 것처럼(요한 15,3), 성체로써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 당신이 사람들을 대하시던 그 마음을 지니게 하신다. 율법은 우리 죄를 고발할 뿐 우리를 살리지는 못한다. 사랑이 우리를 살린다. 그래서 그분은 하느님은 아드님께 몸을 주셨고(히브 10,5), 그 몸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당신처럼 영원히 살게 하셨다. 그 몸이 없었다면 어떻게 당신이 받으신 아버지의 그 사랑을 표현하실 수 있었을까? 그 몸을 이제 우리에게 주신다(1코린 11,24).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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