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주님 수난 성 금요일 (4월 14일, 지극한 슬픔)

이종훈

주님 수난 성 금요일 (4월 14일, 지극한 슬픔)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다. 한 아저씨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하면 큰 죄책감에 홀로 서글피 우는데, 그 슬픔이 너무 커서 그의 부인도 위로할 수 없어 그냥 울게 놓아둔다고 했다. 그 아저씨는 어렸을 때 장난으로 친할머니에게 어머니가 할머니 욕을 했고, 할머니 돈도 훔쳤다고 거짓말을 해서 어머니를 아주 곤란하게 만들었고,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버지에게도 똑같은 거짓말을 해서 어머니가 매를 맞기도 했다고 했다. 그 때는 그런 것이 재미있었단다. 그런데, 그 후 어른이 되어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셨는데, 잠시 정신이 드셨을 때 그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얘야, 너 내가 할머니, 아버지 험담하지 않았고, 돈도 훔치지 않은 것 잘 알지? 그런데 왜 그랬어?’ 그리고 나선 그 후에 어머니는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고 세상을 뜨셨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도,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냥 그렇게 떠나버리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아저씨의 슬픔이 얼마나 지극할까? ‘그 때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하며 괴로워 눈물만 흘리는 것이 이해된다. 그의 슬픔을 누가, 무엇이 위로할 수 있을까? 4월에는 두 부모님의 기일이 함께 있다.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계실 때, 아버지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떠나세요. 회복하시고 깨어나셔도 아버지 삶의 질은 최악일거에요. 우리가 믿는 대로 하느님께 가세요.’ 그리고 며칠 후에 정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 후 10년 넘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말했던 죄책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전화로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는 나의 짜증이었고, 아버지는 내게 ‘미안하다, 귀가 잘 안 들리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죄송하고, 후회스럽고 눈물이 난다. 아무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슬픔이다.

 

예수님은 누명을 쓰고 가장 비참하게 돌아가셨다. 빌라도는 “자, 이 사람이오(요한 19,5).”라고 가시관을 쓰고 모든 사람의 놀림감이 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사람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도대체 그분이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십자가 극형을 받아야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사람들은 저렇게 무기력한 이상주의자를 그들의 임금이요 하느님으로 모실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 속은 지난 몇 년이 억울하고 괘씸했던 것일까?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은 예수님을 모진 매와 비난과 수치로 십자가 위에 매달았다.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이사 52,14).” 그런데 그것이 우리 죄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분의 순종으로 인간의 추악한 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온 세상에 드러났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묘하게 감추어 놓았던 죄의 모습이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성찰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며 후회한다. 하지만, 그 때 뿐, 다음에 또 그렇게 하고야 만다. 참 한심하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다. 그분이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셔서 그런 우리를 오늘도 사랑하신다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날을 회상하며 슬퍼해야겠다. 오늘만은 그 죄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해도 좋겠다. 그것은 부활의 기쁨을 더 잘 누리기 위해서도, 자신을 자책하며 그 뒤에 부족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 때문에 수난하시고 십자가 위에 달려계신 주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우는 것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큰 슬픔이다. 생전 어미의 말을 듣지 않은 청개구리가 어미 유언대로 어미를 물 맑은 시냇가에 묻고, 장맛비가 내릴 때마다 우는 것처럼 울자. ‘어미의 무덤을 생각하고는 먹을 줄도 모르고 자지도 않고 슬프게 슬프게 목놓아 울자(시인 백기만,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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