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부활 4주일, 5월 7일) 함께 살자고

이종훈

(부활 4주일, 5월 7일) 함께 살자고

 

하느님은 초월적인 분이라서 유한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을 부르며 대화하고 그분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우리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셨던 그분이 바로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세상은 하느님이 폭풍우 속에서 바위가 갈라질 정도의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줄로 알겠지만, 사실 그분은 여린 바람결처럼 우리의 귀를 간질이며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1열왕 19,12). 그래서 시끄러운 곳에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자신의 문제와 세상 모든 걱정거리에 휩싸여 있을 때에도 역시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시끄러운 곳을 피해서 고요한 곳으로 가서 번잡스러운 내면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으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여리고 부드럽지만 생명력이 가득한 창조주의 목소리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느님은 왜 우리를 부르시는 걸까요? 당신과 함께 살자고 부르십니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세상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살자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 사이에 농담 같은 말이 있습니다. ‘성인 밑에 순교자 난다.’ 살아 있는 성인과 함께 살아가기 힘들다는 의미일 겁니다. 모든 수도자들이 성인이 되고 싶은 열망으로 살아가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열심히(?) 살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공동체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는 짐이 되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굳이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하지 않아도, 정말 성인처럼 충실하게 사는 수도자와 함께 살면 마치 모범 답안을 매일 보는 것 같아 편하면서도 그의 삶 그 자체로 자극이 돼서 양심을 찌르기 때문에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인이 자애로 저를 때려도 저를 벌해도 좋습니다. 그것은 머릿기름, 제 머리가 마다하지 않으오리다(시편 141,5).” 그의 충실한 생활, 언제나 공동체와 다른 형제들을 먼저 고려하는 그의 사랑은 신선하고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그 형제 옆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농담과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런 수도자가 예수님과 아주 가까울 것이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함께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렇게 살자고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셨지만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그분의 초대를 무시했습니다(마태 22,2-6). 그들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약해서 그런 것입니다. 땅에서 나온 우리는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물질적인 것들이 있어야 편안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물질적인 풍요가 곧 안전과 행복이 아님은 다 압니다. 그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우리 신앙은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삶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증언하시고 부활로 확증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의 뜻대로 살면 참으로 행복합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사십니다. 자신을 찍어달라고 사방에 외치는 이들과는 달리 그분은 조용해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고 초대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초대 받았지만 모든 이들이 하느님과 함께 살지는 못합니다. 그분이 사시는 곳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만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분의 뒤를 따라갑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양들이 목자를 따라 나가서 초원에서 좋고 맛있는 풀을 뜯어 먹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 참된 것을 보고 참되게 사는 법을 배우고 또 그렇게 삽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반대, 방해, 저항, 폭력과 위협 같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잘 견디어 냈고, 그들에게 폭력적으로 복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주님과 함께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1베드 2,20-21).”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영혼을 사랑하는 그 힘으로 그 도전들과 시련들을 견디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우주만물과 역사는 우리 하느님의 것입니다. 요즘 대통령 후보들이 수많은 공약을 쏟아냅니다. 우리는 그것들 중 태반은 실천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고, 현실적으로도 실천하기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시민사회는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정치인들 몇 명이 이루어낸 성과가 분명 아닙니다. 시민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손과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면서도 그 목소리에 매력을 느껴 따르는 이들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십니다, 당신과 함께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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