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나해 4월 11일(부활 제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 용서하는 사람(+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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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4월 11일(부활 제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 용서하는 사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빌라도, 헤로데,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 십자가형을 받게 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셨으면 제자들은 속이 후련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분의 나타남은 그들에게 그 자체로 벌이고 심판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랬으면 그들은 까무러쳐서 숨이 멎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 당신을 따랐던 이들, 사랑한 이들에게만 나타나셨다. 주님의 부활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이고, 증명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갈릴래아로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는 그들에게 나타나 숨을 불어 넣어주시며 용서하라고 분부하셨다. 이는 태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빚어 만드셨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하느님은 당신을 닮은 진흙 인형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창세 2,7). 하느님의 숨으로 생명체가 된 진흙 인형의 임무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새로운 창조를 하셨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갇혀 있던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어 거기서 해방해주셨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숨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왜 당신을 버리고 도망갔냐고, 왜 당신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냐고 묻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용서를 위한 하느님의 선택이고,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건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물하셨다. 주님의 부활은 그 자체로 제자들에게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회복과 재탄생이었다. 진흙 인형의 사명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생명의 관리자였고, 주님 부활로 다시 태어난 제자들이 갈릴래아로 다시 돌아가 해야 할 일은 용서였다. 용서는 새로운 탄생이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주님 부활 이야기는 그 중대하고 신성한 의미에 비해 너무 엉성하다. 나타나셨다는 표현이 전부다. 부활은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사건이라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토마스를 불신의 아이콘처럼 말하곤 한다. 그는 강직하면서도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라자로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다른 제자들은 스승에게 적대적인 유다인들을 걱정했지만, 토마스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11,16). 또한 예수님이 가실 곳을 그들이 알고 있다고 하시자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요한 14,5)”라고 질문했었다. 이런 사람이니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는 동료들의 말에 그분을 직접 뵙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요한 20,25). 토마스의 이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군중들 속에 끼어 휩쓸려 다니는 것보다 모르면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

 

하지만 토마스의 그런 솔직함과 강직함 뒤에 있는 고통이 느껴진다. 다른 제자들처럼 믿고 기뻐하지 못하는 고통이다. 그런 일이 있었던 뒤 여드레가 지난 뒤에 토마스도 있는 자리에 주님은 다시 나타나셨다. 이스라엘은 태어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었다(루카 1,59; 2,21). 토마스는 그날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하며 불신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시 태어났다. 예수님을 주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느님의 죽음으로 용서받았고 또 그렇게 용서하겠다는 다짐이다.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살 수 있다.

 

주님, 저에게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모든 죄를 없애시고 모든 허물을 덮으신다고 믿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수 있고, 이웃의 실수와 잘못을 사랑과 희생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아드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저에게 비추어주소서. 아멘.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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