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사랑과 희생

이종훈

질병처럼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겁니다. 치료비 때문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전에 누리던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그 병이 다른 이들과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더욱 가난해질 겁니다. 예수님 시대에 나병은 1급 전염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모든 병은 죄의 결과로 여겼으니 나병에 걸린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때문에 그 자체로 큰 죄를 지은 것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병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정하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레위 13,46).” 그 병에 걸린 사람은 죽음만큼이나 철저하게 소외당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0).’”라고 말했던 나병환자는 자신의 병을 치유해달라고 청할 수도 없을 만큼 세상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히 소외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세상 사이에 율법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조차도 버린 자신은 너무나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울타리를 넘어가셨습니다. 그에게 손을 데신 것입니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어서 함께 있어서도 안 되는데도 그분은 그를 만지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42절)’고 전합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 사본에는 이를 ‘화를 내셨다’고 번역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아니라, 그를 그 지경으로 만든 악에 대한 분노였겠지요. 분노가 너무 크면 슬픔으로 변하는 것을 생각하면 두 번역은 정반대의 번역이 아닙니다. 우리도 불의와 부정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크면 마음이 아파 눈물까지 흘리게 됨을 경험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한 영혼을 저토록 철저히 소외시키고 파멸시키는 악에 대해서 분노하시고 그 분노가 넘쳐서 슬픔으로 변하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마치 당신이 나병에 걸린 것처럼, 죄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그의 부정, 세상이 그에게 덮어 씌어 놓은 부정을 당신이 모두 덮어쓰신 것 같습니다.

 

그 나병환자는 그렇게 치유를 받았고 예수님은 그에게 철저한 함구를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놀라운 일은 겪은 그 사람은 예수님의 당부를 쉽게 잊고 온 사방에 이 일을 알렸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마르 1,45)” 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병으로 외딴곳에 있던 그 사람은 고을로 자랑스럽게 들어갔고, 그렇게 만들어준 주님은 그 사람이 있던 외딴곳에 계시게 됐습니다. 소외된 이의 자리에, 병자의 자리에, 죄인의 자리에 계시게 됐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우리와 같은 한계를 지닌 한 인간이셨습니다.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무한한 사랑을 지니셨습니다. 엄한 율법의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가셨고, 그로 인한 질책과 징벌을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랑과 자비는 무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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