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그리스도인의 표지 충실(주님 승천 대축일, 5월 28일)

이종훈

그리스도인의 표지 충실(주님 승천 대축일, 5월 28일)

 

수도자는 1년에 8일씩 피정을 해야 하는 권리와 의무를 지닙니다. 시끄러운 세상을 잠시 떠나 고요한 곳에서 좋은 강의도 듣고, 자신의 삶도 뒤돌아보면서 주님과 깊은 친교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런 시간을 보낼 때마다 이렇게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다른 이웃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넘어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죄책감 비슷한 마음도 듭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준비되는 강론, 피정 강의가 어렵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웃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던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온전히 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웃에게 영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왠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주춤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고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거룩하게 되고(레위 11,44.45), 완전하게 되라고 명령하셨음(마태 5,48)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정신없게 만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해도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가 영적인 존재이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짐승과 다르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자신이 영적인 존재이며 하느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매일 성당가고 교회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전부는 분명 아닐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수도자와 성직자들입니다. 전쟁 같은 시간들을 버텨내기도 버거운 데, 거기에 성당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면 어쩌면 차라리 그냥 동물이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거룩하고 완전하게 사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모범 답안은 예수님의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전도 일을 하시기 전까지 그분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셨습니다. 공생활이 몇 년 되지 않았으니 당신 생의 대부분을 그렇게 사신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쉽게 공감했고, 그러면서도 그분의 말씀에는 다른 율법학자와는 달리 힘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권위가 있었습니다(마르 1,22). 그분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갑자기 그런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전까지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습니다. 공생활은 그 전까지 살아왔던 것과 전혀 다른 삶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시는 일이 바뀌었을 뿐이었습니다.

 

알폰소 성인은 유명한 변호사였습니다. 성인은 변호사이기 이전에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호사 일을 하기 위해 십계명 같은 행동강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된 이후에도 변호사였을 때와 같이 사제 행동강령을 만들었습니다. 두 행동강령은 단어와 내용만 다를 뿐 그 원리는 같습니다. 그 원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충실함이었습니다. 그분은 변호사에서 사제가 되고 수도회를 설립하고 하느님 품에 안기는 그 날까지 자신이 받은 모든 재능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남김없이 봉헌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위대한 성인이 되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하느님께 받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대한 응답이 성실, 충실이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이 오시고, 복음을 설교하시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시고,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피하지 않으신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 사랑이 당신의 삶을 이루는 원리였고, 그분의 삶은 그것을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지상 삶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하늘나라로 금의환향하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유다 조그만 땅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알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는 그들과 언제나 함께 계시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당신을 알고 믿는 모든 이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고 성실과 충실로 세상에 그 사랑을 전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일을 하며 살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같은 이유로 하나가 됩니다. 세례가 아니라 충실로써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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