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5월 31일(방문축일) 그리스도인의 행복

이종훈

5월 31일(방문축일) 그리스도인의 행복

 

 

외국 코미디를 보면 그 장면이 왜 웃기는지 도통 모를 때가 적지 않다. 언어, 문화, 처한 상황이 달라 그럴 거다. 웃음 코드가 다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것에서 기뻐하는가? 어떤 것이 행복의 원천인가?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전해들은 하느님의 뜻과 그 초대에 고심 끝에 “예,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응답하셨다. 그리고 임신할 수 없다고 알고 있던 친척 언니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듣고 그를 방문했다. 그 때는 마리아가 몸에서 아직 태기를 느낄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런데, 그의 방문에 뛰노는 태 안의 아기의 움직임을 느낀 엘리사벳은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고 칭송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두 여인은 벌써 기뻐하며 난리가 났었던 것 같다.

 

두 여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기쁨 코드, 행복의 원천은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이란다. 마리아는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태기도 느끼지 못하는데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말이 진짜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것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기쁨에 넘쳐 노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미래를 다 내다보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모든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믿음은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 여기서 기뻐하게 만든다.

 

엘리사벳은 여자로서 아기를 낳지 못한 긴 시간 서럽고 괴롭게 살았는데,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기를 갖게 되어 기뻐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루카 1,25).”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다. 남자의 도움 없이 아기를 낳아 길러야 하고, 그 아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 계획이 완전히 엉망이 되고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었음을 확인하고는 기뻐했다. 부정한 여인이 되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도, 하느님의 계획에 자신의 인생계획과 생명을 내어 놓았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한 여인이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느님의 뜻 안에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말 그대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고 또 그분의 계획이고 뜻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자신의 계획과 꿈이 이루어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 하느님의 계획과 뜻이 자리 잡고 자신과 주위 모든 일들이 그 뜻대로 이루어질 때 최고로 행복하다. 그렇게 내 안에서 나의 뜻과 계획을 치워낸 그 자리를 차지한 하느님의 뜻, 단지 그것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믿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다. 행복은 나의 봉헌 안에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 내용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밤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가물어도 시간이 지나면 비가 내리는 것처럼, 거짓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진실이 다 밝혀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느님의 뜻은 꼭 이루어지고야 만다. 지금 이 자리가 엉망진창이어도 하느님의 뜻은 꼭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이 절망 속에서도 기뻐하게 하고, 그래서 행복하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그렇게 목청껏 기쁨의 노래를 불렀던 마리아의 인생은 그 노래와는 사뭇 달랐다. 이제 뭔가 시작한 것 같았는데,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마 마리아는 아들의 주검을 안고 오열하는 그 시간에 가브리엘 천사가 해 준 말과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목동들이 전해 준 말, 엘리사벳이 전해 준 말, 그리고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 아들이 해 준 말을 기억하며 그의 주검을 꼭 끌어안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은 이루어진 것이라고 또다시 믿었을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그 현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아니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상황 안에서 어떤 사람이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나의 실패, 나의 계획이 엉망이 되는 바로 그 시간이 하느님께 나의 봉헌과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면, 그리 하십시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지만,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데 있고, 그 봉헌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 믿음은 미래의 일, 즉 하느님의 승리를 이미 담고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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