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사랑의 능력 (성령강림대축일, 6월 4일)

이종훈

사랑의 능력(성령강림대축일, 6월 4일) 

 

지난 해 전 세계 80여 국가에서 구속주회 대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계총회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형제들의 모임이니만큼 소통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영어, 스페인어, 이태리어를 공식 언어였고, 6명의 형제가 통역 봉사했습니다. 영어를 쓰는 형제들이 많았는데, 각기 자기나라 억양으로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미국 영어, 호주 영어, 싱가포르, 인도, 필리핀, 한국, 일본 등 각기 그 나라의 독특한 방식으로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이런 환경을 처음 접한 미국 형제들은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이런 모임에 익숙한 형제들은 상대적으로 덜 어려워했습니다. 가끔은 통역사가 그 시기를 놓쳐서 스페인어나 이태리어를 그냥 들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언어를 모르는데도 집중해서 들으니 대충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형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모르는 언어도 알아듣게 해 준 것 같습니다.

 

창세기는 바벨탑의 이야기를 통해서 왜 인간이 소통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알려줍니다(창세 11,1-9). 인간은 탑을 높이 쌓아 하늘에 이르러 온 세상에 이름을 날리려고 했고, 이것을 걱정하신 하느님이 인간이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 소통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하던 일을 포기하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헛된 욕망이 서로 소통할 수 없게 했습니다. 여기서 불통의 원인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되고자 했던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참 하느님은 하늘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참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늘에서 인간을 내려다보시며 당신 원하시는 대로 인간사를 조종하시는 능력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오셔서 피조물 중의 하나가 되기까지 낮아지고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을 수 있는 사랑이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그런 하느님은 그런 능력으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런 능력을 지닌 예수님은 닫혀 있는 문도 통과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 곁으로 다가가실 수 있었습니다(요한 20,19). 방문과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 놓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 가운데로 가셨고, 그들의 두려움과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형제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벽을 뚫고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했던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이틀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지만,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죽지 않음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그 상처는 인간의 죄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오만이고, 가짜 하느님을 찾는 오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소식은 오만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의 시작을 알림이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이 온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는 선포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곧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에서 절정을 이루며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의인이나 선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한 희생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온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모욕하던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셨습니다(루카 23,4).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고, 또 당신 인생의 요약이었습니다. 바로 그분이 당신의 영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어주시며 그들도 당신처럼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요한 20,22-23). 당신처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다면, 성령께서 이미 그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입니다(1코린 12,3).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지혜, 통찰, 의견, 용기, 지식, 공경, 경외의 은사를 주셔서 서로의 닫힌 마음의 문을 뚫고 들어갈 수 있게 하십니다. 불화, 불신, 불목, 적대감, 오류, 업신여김, 게으름, 두려움의 벽을 뚫고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일이고, 또 가짜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을 흩어버리신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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