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믿음 (미사의 은총)

이종훈

얼마 전에 한 가족과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중 한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성장 과정을 멀리서 지켜봤고, 혼인 주례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할 줄 알았는데, 어색해하고 그 자리가 불편해 보였습니다. 식사하며 대화 도중에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주일미사에 잘 참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우연히 그 식당 주인도 신자였는데, 그도 같은 입장이어서 사제인 저를 어렵고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양들이 목자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의 친구셨고, 그들은 그런 그분을 좋아하고 따랐는데, 오늘날의 목자인 사제와 하느님의 양 떼인 신자들은 어찌 된 일인지 멀어지고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일미사참례 의무라는 법이 사제와 신자, 하느님과 당신의 양 떼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하느님 자녀를 기르는 양식이며 죄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는 약입니다. 한 마디로 죄인들을 위한 음식이요 약이니, 죄를 지으면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더 먹고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신자들이 고백하는 죄 중 가장 많은 것이 주일미사 혹은 의무 대축일 미사 거른 죄일 겁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큰 죄를 짓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주일미사 불참이기 가장 큰 죄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마도 고백하기 가장 편해서(?)일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단순히 수계생활, 즉 의무사항만 이행하는 것으로 이해한 잘못입니다. 그것이 의무라고 하니까 ‘죄짓기 싫어서’ 더 솔직히 말하자면 ‘고해성사 하기 귀찮아서’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사람과 피곤 또는 게으름 때문에, 혹은 생계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사람 중 누가 예수님과 더 친해질까요? 물론 미사에 참여한 사람은 성체를 모셨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못 모셨습니다. 하지만 성체를 자주 모셨다고 그만큼 큰 은총을 받고 더 거룩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함께 처형된 죄수 중 하나는 그 날 그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갔습니다. 한 마디로 하늘나라도 훔친 셈입니다(루카 23,42-43). 그는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께 청해서 최고의 은총을 얻어 누렸습니다. 사실 그 시간 거기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그것, 염치불구하고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는 것밖에 없었을 겁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이라도 받는 이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그것은 귀찮은 짐이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그 사형수의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있게 될 겁니다.

 

주일미사 참례는 신자들의 영혼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입니다. 영혼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 시간 만이라도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교회와 하느님의 호소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법이지만, 우리의 구원이 곧 하느님의 기쁨이니 우리가 그 법을 지키면 하느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런데 몸은 거기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거나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하느님은 상처받으실 것 같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나약함으로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지 못하는 송구스러운 마음 안에는 하느님이 사랑과 자비가 들어갈 자리가 생겨날 것 같습니다. 사실 주일미사 중에 깊은 감동, 기쁨, 또는 진정한 통회로 인한 평안을 느끼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하느님 안에 쉬게 된다면, 아마 대부분의 신자는 주일미사에 참석할 것입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가서 있기만 하면 들려주고, 먹여주고, 감동하는 그 잔치를 왜 피하겠습니까? 그 짧은 시간 안에, 하느님은 배고픈 자녀들을 먹이시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들은 또다시 세상으로 나가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볼 때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거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 시간을 하느님의 시간이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성찬례를 주관하는 사제들은 그 시간을 충실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제는 사제이기 전에 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니 신자들에게는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부족하고 불충실하고 비윤리적인 사제일지라도 하느님은 그런 이를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고, 그의 말에 따라 작은 빵과 포도주 한 모금을 하느님의 살과 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전능은 한 연약한 인간의 손에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시고, 심지어 그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시는 그분의 충실함과 겸손 안에 있습니다. 말하는 이는 사제이지만, 그 말이 감동을 실어 삶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물과 포도주를 봉헌하지만 그것을 당신의 몸과 피로 만드시고 영혼의 양식이 되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거기서 포도가 열리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물과 포도를 섞는 일은 우리가 하지만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혈이 되게 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주일미사 참례를 비롯한 여러 교회법을 지키지만 그것들이 은총이 되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비어있지 않다면 그 은총도 주일미사에 억지로 참석하는 것처럼 짐스러운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은 밍밍한 물과 같은 삶을 맛있는 포도주처럼 신명나게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 성모님께서 계셨던 것처럼, 나의 잔치에 성모님께서 계시면 그 잔치에는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는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실 겁니다, 나의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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