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나해 12월 9일 폭력적으로 회개하기(+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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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12월 9일 폭력적으로 회개하기

피정 봉사가 끝나면 감사 인사를 많이 받는다. 어떤 피정이든 좋지 않은 피정은 없다. 피정을 지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봉사자일 뿐이다. 설교나 강론도 마찬가지다. 말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말하는 이는 나지만 나도 그 설교를 듣는 교우 중의 하나다. 설교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다음이 중요하다. 귀가 즐겁거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들은 대로 행동하고 뜨거웠던 만큼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러서가 아니라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마태 7, 21).

요한 세례자는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는 광야에서 살았고 낙타털옷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마태 3, 4).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손에 완전히 맡겼다. 그래서인지 회개를 요구하는 그의 설교는 폭력에 가까웠다. 대충 또는 어설프게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는 위대한 예언자 중 하나였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마태 11, 11).” 거룩하게 말한다고 거룩하지 않다. 가슴이 뜨거운 게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신 이후로 하늘나라 시민으로 사셨고, 그 나라 임금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셨다.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요한은 광야에서 홀로 지냈지만, 그분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알고 있던 자녀도 낳지 않으셨다. 불의한 죽음도 피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삶의 모든 것, 죽음까지도 모두 아버지 하느님께 맡기셨다. 예수님이야말로 말과 행동을 통해서 ‘폭력적으로’ 하늘나라를 전하셨다. 거지 라자로와 집주인 부자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 서로 오갈 수 없었던 것처럼(루카 16, 26) 하늘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에 중간지대는 없다. 하느님 편과 그 반대편만 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느님과 마몬(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 24).

우리의 관심은 지금 여기다. 하늘나라가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도 구원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바꾸겠다고 미루는 이들은 대부분 나중에 안 바꾼다. 아니 못 바꾼다. 바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한을 비롯한 하느님의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이 겪으신 일 때문에 주저한다지만 그건 핑계고 유혹이다. 세상 무슨 일을 해도 범행마저도 다 어렵고 수고해야 한다. 저절로 되는 건 재채기뿐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지금 나를 고집하면 아주 운이 좋아야 미라가 될 뿐이다. 하지만 주님 말씀에 따라 삶을 바꾸면 하늘나라의 천사처럼 된다(마태 22, 30).

예수님, 회개하고 복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마음만 설레발을 치지 몸은 정말 굼뜹니다. 어리석다기보다는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겁니다. 한 발짝만 물러나 주님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제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바로 알게 되는 데도 그럽니다. 심지도 거두지도 모아들이지도 않는 새들을 저렇게 먹이시고 하루 피고 질 꽃도 그렇게 가꾸시고 자격 없는 이들을 이렇게 살게 하시는데, 주님 당신을 믿지 않으면 어디서 누구에게 기대겠습니까?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천사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아들으신 것처럼 저도 지금 여기서 듣는 말씀을 그렇게 알아듣게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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