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6월 22일 도박

이종훈

622일 도박

 

청원기도보다 감사기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우리의 신앙이 현실기복적인 것이 될 까봐 우려해서 한 말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보다는 청할 것이 훨씬 더 많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수많은 것들을 청하니 바쁘셔서 나의 청원을 잠시 잊어버리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대로 내가 내게 필요한 것을 잊어버리거나 혹은 그것이 진정으로 내게 필요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 채 하느님께 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 자녀로서 끊임없이 청해야 한다. 죽는 순간에도 선종, 즉 잘 죽게 해달라고 청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청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슬퍼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처지를 잘 아셨다. 그분은 아버지께 청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다. 단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무의미한 긴 기도를 금하셨을 뿐이다. 그것은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마태 6,7-8).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가 말하기도 전에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안다. 그가 아닌데도 그를 안다. 때로는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도 모르는 것을 알기도 한다. 마치 하느님께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듯이, 내가 그가 아니고 그도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은 나를 떠나 너에게로 들어가고 그와 함께 산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도 우리가 끊임없이 청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서도 커져가기를 내가 바라야 한다는 뜻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나도 이 땅 위에서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용서이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다. 나는 그저 바라기만 하면 된다. 그저 그분의 일이 내 안에서 먼저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된다. 이 간단한 청원을 계속 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기를 거부하거나 주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용서야 말로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 하느님처럼 행동할 수 있는 가장 하느님다운 행위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드님까지 내어주시면서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치셨다. 어쩌면 내가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꺼이 바라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하느님처럼 아들같이 귀한 나의 어떤 것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인가 보다. 마치 도박 같다. 보이지 않는 카드에 자신의 것을 거는 것처럼, 글로만, 말로만 전해지는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쥐고 있었으면서 이리저리 굴려 받지만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을 보면 이 도박은 실패해도 크게 손해 볼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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