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새로운 길에 대한 확신 (다해 연중 제4주일)

이종훈

착하게 살고, 좋은 일, 정의로운 일을 하려 하면 모든 것이 서로 잘 작용해서 일이 잘되어 갈 것 같고, 또한 그러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에 부딪히고, 경제적이고 제도적인 이유로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대중에게 소개되는 성공사례는 예외적인 것이고, 게다가 그분들이 겪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세상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살지 않는 것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정의를 부르짖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하고, 찬사를 보내며,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막상 자신도 그렇게 살려고 하면 주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게 살려고 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줄 잘 알기 때문이겠습니다. 원하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저 부러워할 뿐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선한 지향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강한 의지와 굳은 신념 때문일 것 같습니다. 거기에 그것에 대한 확신이 세상의 도전을 받고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수록 오히려 그의 의지와 신념을 더 굳건하고 순수하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가 이르러 복음전도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분을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은 제일 먼저 고향 땅에서 배척을 받으셨고, 하마터면 죽임을 당하실 뻔했습니다. 그분을 잘 안다고 여기는 그들의 닫힌 마음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루카 4,22). 그들의 닫힌 마음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알려주시는 새로운 길(사도 9,2)이요, 구원의 길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새로운 길은 반민족적이고 이단이었습니다.

 

그런 죄인은 죽어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화가 잔뜩 나서 그분을 고을 밖으로 내몰아 벼랑까지 끌고 가 예수님을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습니다(루카 4,28-31).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위기를 이겨내셨을까요? 성경은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그 벼랑 끝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수님이 어떤 말씀, 어떤 행동을 하셨기에 기세등등하고 살기 기득 찬 그들 사이를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바다를 가르고 마른 발로 건너듯이 그들 한가운데를 지나가셨을까요? 좋은 묵상 거리입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고향 사람들이 당신을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고 전합니다(마르 6,6). 그러고 보면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은 하느님을 가장 많이 알고, 하느님과 가장 가깝다고 보이는 이들이었습니다. 당신이 빚은 세상에 오셨고,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제일 먼저 당신을 알아보고 반겨야 할 이들과 맞서게 되시고 그들에게 거부당하는 현실에 그분은 놀라고 또 인간적으로 크게 실망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한결같이 당신의 일을 해나가셨고, 십자가의 죽기까지 당신의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새로운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새로운 길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거기에서는 민족, 국가, 종교, 언어, 문화의 다름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전 것과 다른 길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길이라서 혁명적인 길입니다.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는 지극히 당연한 길이었지만, 좁은 울타리와 사고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죄인은 벌을 받고, 공동체의 안전을 해치는 이는 밖으로 내보내 져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죄인이 되셨고, 공동체 밖으로, 예루살렘 밖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실 줄 아시면서도 그분은 그 길을 끝까지 가셨습니다. 실망하시고, 분노하셨지만 가시던 길을, 가셔야 할 길을 가셨습니다. 죽음의 위협도 그분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는 확신이 그분 안에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반대와 위협에 떨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을 떨게 하셨으며, 마치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든 요새와 같았습니다(예레 1,17-18). 그분은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그런 것도 그분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 길을 가고 계시고, 여전히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분이 그토록 강하셨던 것은 사랑하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언제나 당신과 함께 계시다는 확신이었는데,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었습니다. 착하고 의롭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도 그런 확신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청해서 받아야 하는 선물입니다. 그것만 있다면, 실수하고 실패해도, 실망스러워도, 이해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아도, 심지어 죄를 지어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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