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하느님께 낚임 (다해 연중 제5주일)

이종훈

살면서 진실한 친구 세 명만 얻었다면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셋이 아니라 한 명만이라도 생겼다면 고단한 삶을 견디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민낯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혼자서 전교하지 않으시고 열두 명의 동료들을 만들어 그들과 함께 다니셨습니다. 신학자들은 그들을 두고 제도적인 교회의 시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라는 조직도 필요했을 겁니다. 그 교회는 분명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요 친구(요한 15,14.15)들입니다. 그분과 매우 친한 친구들입니다. 속된 말로 그들은 예수님에게 꽂힌 사람들이고 그분에게 낚인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그들을 낚으셨던 것처럼, 그들도 사람들을 낚아서 예수님의 제자요, 아주 친한 친구들도 만들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부였던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그러자 그는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동료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고, 하느님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 즉 하느님의 말씀은 이 세상 저 너머, 저 높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마 예수님은 시몬의 배를 저어 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설교하신 것 같습니다. 마치 이 땅 저 너머에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듯 말입니다(루카 5,3). 사람들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시몬과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부가 아닌데도 그분의 말씀대로 해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진 가슴과 그 놀라운 경험을 한 시몬은 하느님의 현존, 신적 현실, 하느님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한 후 그의 첫 마디는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보면 죽는다고 알고 있었던 그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인생 마지막 날에 그분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게 되겠지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날을 두려워합니다. 사실 그분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만남은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과거를 너무나 잘 알고, 그날이 되면 잊었던 것까지 모두 기억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형제들의 설교나 강론 듣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큰 모임에 가면 참석자들은 돌아가면서 성찬례를 주례하고 강론을 준비합니다. 강론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큰 부담이지만, 그 설교를 듣는 다른 형제들 큰 기쁨입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거의 대부분 형제들은 기뻐하고 주례자에게 가서 좋은 나눔, 강론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평일미사 강론은 길어야 5분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감사 인사는 겉치레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깊은 감동과 복음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됨은 분명 그 자리, 그 시간에 하느님의 영이 함께 계셨음 밖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말씀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설교자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듣는 이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갈증이 있으니, 그분은 아주 쉽게 당신의 메시지를 전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분명 하느님을 그렇게 만납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만남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아픈 일일 겁니다. 한없이 아름다운 분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안함 그리고 후회와 회한 가득한 시간입니다. 더 베풀지 못하고, 더 인내하지 못하고, 더 사랑하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의 시간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나랑 사람 낚는 일을 하지 않을래?’하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쩌다 그랬니? 너는 그 때 이렇게 했어야 했어.’ 혹은 ‘너는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허물과 상처 그리고 죄에 대해서 묻지 않습니다. 억지로 당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당신과 함께 사람 낚는 일을 해보자고 초대하십니다. 그분이 그런 일에 우리가 부족하고 부당하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이런 분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분과 함께 라면 실수는 농담거리가 되고, 실패는 성장하게 하는 음식이 될 겁니다. 하느님을 만남이 두려움이라는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없애 주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죽겠습니까? 친한 친구들은 나의 고통 앞에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줄 수는 있겠지만, 나를 위해서 죽지는 못할 겁니다. 세 명의 진실한 친구, 아니 한 명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분명 행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꽂히고, 하느님에게 낚임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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