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31일 인내

이종훈

7월 31일 인내

 

월말이 가까우면 지갑을 자주 열어 확인하게 된다. 쓸데없는 일이다.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해야 할 일을 못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지 못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얇아진 지갑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인가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는 중에 하느님의 계명을 받았다. 그들의 인도자 모세가 그 일을 담당했다. 그런데 그것을 받으러 간 모세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은 불안해졌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게 되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한심하다고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얇아진 지갑을 자꾸 열어보는 나와 다르지 않다. 별로 돈 쓸데도 없는데 그렇다. 물신(物神)의 위력이다. 돈이 곧 권력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신과 같다. 게다가 감각적인 것에 의존하는 인간에게 돈은 힘, 안전, 평화이고 곧 구원처럼 보인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불안해지고 조급해져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성급하게 선(善)이라고, 어떤 때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우기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기뻐하고 경배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금을 신으로 만들었다(탈출 32,31).” 모세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하느님이 손수 만드시고 당신의 계명을 손수 적어주신 석판을 그 자리에서 깨버렸다. 화가 나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금송아지 앞에서 절하며 기뻐하는 그들에게 석판에 엉성하게 써진 글 몇 줄이 눈에 들어오기나 했겠는가? 하루만에도 세상이 바뀌고,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오늘날이다. 이런 세상에서 십자가 위에 힘없이 매달려 있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이천 년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는 하느님을 한쪽으로 밀어내버리는 것 같다. 

 

하느님의 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모세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탈출 32,23).” 그들의 불평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느님은 우리의 청원과 바람을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결코 악한 것을 청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성급하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올바르지 못한 방법을 쓰면서 그것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우기는 것 같다. 덥지만 조금 있으면 선선해질 것이다. 새벽에 우는 풀벌레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그것을 알려준다. 앞이 캄캄했던 지난 시간들도 있었지 않나? 곰국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과 보살핌 그리고 인내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된다. 오늘도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그리고 나의 청원도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여길 수 있는 믿음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 하느님의 계명이 적힌 석판은 깨졌지만, 그 대신 믿고 인내하며 기다린 이들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더욱 깊고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예수님, 

십자가 위에 계신 주님의 모습이 

어떤 날은 저를 불안하게 하고, 

또 어떤 날은 큰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오늘은 믿는다고 눈물 흘려 고백하고 

내일은 다시 불안해지고 조바심이 납니다. 

이런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바로 저의 진짜 모습인걸요.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이 당신의 어머니를 

저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는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룰 때까지 어떻게 걸어가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뒤뚱거리지만 그래도 똑바로 앞으로 걸어가려고 합니다. 

십자가의 빛을 바라보며 성모님의 손을 잡고 

끌려가듯, 서둘러 앞서가듯 앞으로 나아갑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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