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8월 3일 바람에 나를 맡기며

이종훈

8월 3일 바람에 나를 맡기며

 

산행을 하다보면 덥고 지치고 땀이 많이 난다. 좋아서 시작한 산행인데도 ‘얼마나 더 가야하나? 지친다. 왜 이리 더운 거야, 모기는 왜 이렇게 많고...’ 등등 속에서 불평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는다. 그 바람을 가능한 많이 맞으려고 모자도 벗고 두 팔을 벌려 가슴을 활짝 편다. 어떤 때는 눈물이 괴일 정도로 그 바람이 반갑고 고맙고 참 좋다. 그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얼마를 더 가야하는지, 내일 해야 할 일들, 만나야 하는 사람들, 풀어야 하는 숙제 등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그 바람이 마음속의 먼지 같은 쓸데없는 걱정들을 다 날려 버리는 것 같다. 그렇게 바람을 맞아들이고 감사한다. 그리고 바람이 멎으면 눈을 뜨고 묵묵히 가던 길을 또 걷는다.

 

사람들은 우리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믿는 하느님은 왜 세상에서 벌어지는 악행들을 방치합니까?’ 이 질문은 우리 신앙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악행에 대한 고통과 좋은 세상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다. 맞다, 하느님은 선하시지만 세상에서는 매일 악행이 벌어진다. 하늘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이 땅으로 내려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배웠다. 하느님이 완전히 승리하시는 세상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그 악행을 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 악이 존재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 대답을 찾는 노력은 진지함을 가장한 시간 낭비요, 정력낭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지 악의 근원을 찾아 그 뿌리를 캐내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당신의 방문 앞에 ‘불평금지’라는 포스터를 붙여 놓으셨다( https://kr.radiovaticana.va/news/2017/07/20/교황_방_앞에_붙은_‘불평_금지’_포스터/1326077). 세상에 악행이 있고, 불공평한 것은 예수님도 알고 계셨다. 당신은 모든 이들을 당신 마음에 담고 싶으셨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마지막 날에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려지게 된다(마태 13,47). 

 

하늘나라 시민은 그의 마음과 삶을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사람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속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그것을 지속적인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세상의 악행, 불공평, 불의에 마음을 쓰게 유혹한다. 마치 자신이 정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정의로운 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소중한 시간과 정력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붇게 한다. 낭비다. 그러나 선과 악을 마치 두부를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알고 있다(창세 2,17). 하느님만이 그것을 구분하실 수 있고, 그분만이 올바르게 재판하실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악행으로 인한 비극과 비참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때론 분노하지만 우리의 몫은 딱 거기까지이다. 그 이상은 악의 덫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절제해야 한다. 

 

하느님의 자녀들의 큰 특징은 단순함이다. 하느님은 지극히 단순하시기 때문이다. 단순한 것이 강하고 오래 버틴다. 마음의 그 단순성은 사물과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눈이다. 그것은 복잡한 세상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바람이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열망이다. 때로는 참회와 회개의 눈물로, 때로는 희생과 선행으로, 때로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거룩한 결심으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 연약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 우리가 바라기만 하면, 그분과 함께 머물기만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불교는 환생을 믿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뿐이다. 인생이 그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머뭇거림 자체가 시간낭비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면 언제나 다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는 길도 모르면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겠다고 길을 나섰다. 그런 그들을 이끌었던 것은 하느님의 증언판이 담겨 있는 주님의 성막이었다. 그런데 구름이 그 성막을 덮으면 하느님과 그렇게 친한 모세도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러다가 구름이 걷히면 다시 길을 떠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히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부르실 때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분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다. 거기에서 우리의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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