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8월 4일 행복한 눈과 귀

이종훈

8월 4일 행복한 눈과 귀

 

말복이 11일인데, 입추는 6일이다. 절기가 계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 텐데, 선선한 새벽바람은 오늘이 어제보다 더 뜨거울 거라는 예보를 의심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한낮이 뜨겁기는 하지만 왠지 무더운 바람과는 조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아직 뜨겁지만 가을은 벌써 들어와 있는 게 분명하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사셨다. 하느님이셨지만 그렇다고 공중에 떠다니시거나 얼굴에서 빛이 나지도 않으셨다. 엄청난 힘을 지니셨거나 머리가 비상하지도 않으셨던 것 같다. 우리 동네 아저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셨을 것 같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지만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그분의 말씀은 특별하게 들렸고,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행동하시는데 뭔가 특별하게 보였다. 그것을 듣고 본 사람들 중 일부는 그분을 좋아하고 따랐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태 13,57). 평범함 중의 그 특별함을 하느님의 모습으로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 그분의 말씀을 같은 언어로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은 행복했다. 

 

우리의 일상 안에는 하느님 구원의 표지들이 들어와 있다. 뜨거운 한낮에도 가을이 다가왔음을 감지할 수 있고,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선물이다. 남들은 갖지 못한 그런 눈과 그런 귀를 가졌으니 행복하다. 

 

우리의 삶에는 죽음이 들어와 있다. 이웃들과 가족들이 내 곁을 떠나고, 한 해 한 해 몸이 달라진다. 죽음이 더 가까이 왔고, 그 다음은 내 차례다. 죽음이 생의 최대 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름 안에 이미 가을이 들어와 있고, 일상 안에 하느님이 들어와 계신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당연한 것이라서 두려움의 대상이 못 된다. 원래 사람은 죽게 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내 안에 들어와 계신 하느님이다. 본래 떠나게 되어 있는 것에 미련을 두는 이는 미련한 사람이다. 그 옛날 한 동네 아저씨에게서 하느님을 보고, 그의 목소리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이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 오늘도 뜨겁겠지만, 그 안에서 선선한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참 좋은 친구 예수님,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더 깊게 깨닫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서 사실 때 

지니셨던 그 눈과 귀 그리고 그 마음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리하여, 뜨거움 속에서도 선선함을 

어둠 속에서도 빛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죽음을 통해 얻는 생명의 길을 보고 듣게 해주십시오. 

 

이웃들의 잘못, 실수, 죄를 판단하고 단죄하고 싶은 유혹을 피하고 

그들 안에서 피어나고 있는 하느님 사랑의 작은 불꽃들을 발견하고 

그 불꽃이 더욱 커지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을 제게 주십시오. 

추수 날에 버려질 가라지와 땅바닥에 버려질 나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 곳간에 채워질 밀 곡식, 그릇에 담겨질 물고기들만 보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저도 그 옛날 행복했던 그 사람들처럼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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