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10월 30일 하느님의 상속자

10월 30일 하느님의 상속자

아침미사를 준비하며 첫째 독서인 로마서를 읽어 내려간다. 육의 법칙, 영의 법칙, 죽음과 생명, 하느님의 자녀와 상속자, 공동상속자 등 굵직굵직한 신학적 용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는 사이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해주시는 분이다. 이 시간이면 늘 듣던 소리인데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신문을 꽂아 놓고 다음 장소로 달려가는 그분의 뒷모습에 이어 새벽 버스에 고단한 몸을 싣고 일터로 가는 아주머니들,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못하고 지하철로 바쁘게 걸어가는 젊은이들, 일터로 자신들을 싣고 갈 승합차를 기다리며 어깨를 움츠리고 길거리에 서 있는 일용직 근로자 아저씨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분들에게 내가 방금 읽은 이 신학적인 단어들이 위로와 희망 기쁨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과 함께 내가 지금 이러고 앉아 그런 것들을 묵상함이 왠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우리가 육체를 갖고 사는지, 입고 사는지, 그 안에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근심 걱정 그리고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의 그렇게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거다.

근 20년을 허리를 펴지 못한 채 회당에 나타난 여인을 보시고, 예수님은 또 다시 위경련을 일어난 듯 그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신다. 그녀는 치유해달라고 청하기는커녕 상대의 얼굴을 볼 수도 없으니 자신 앞에 서 있는 이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 13,12).”라고 말씀하시며 그녀를 풀어주셨다. 그래서 그녀도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게 해주셨다. 그녀가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을 하게 해주셨다.

우리나라를 그리스도교 국가로 오해하게 만드는 밤하늘의 저 많은 붉은 십자가와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개신교우들, 그리고 아침미사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천주교 신자들이 새벽을 여는 모든 이들과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옆을 돌아볼 수도 없이 직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 그리고 기쁨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상속받은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