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지금 여기에서 먼저(사순 3주일, 3월 4일)

이종훈

지금 여기에서 먼저(사순 3주일, 3월 4일)

 

우리는 죽으면 그 즉시 하느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심판을 받아 천당, 연옥, 지옥 중 한 곳이 우리가 머무를 집으로 정해집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 선한 이 악한 이 생존자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삶이 다 밝혀지는 공심판을 받습니다. 공심판 때에는 하느님과 나만 알고 있었던 사심판의 결과가 온 세상에 알려지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현실이 공심판 때에 벌어질 일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그 형벌을 받는 것이 나중에 죄에 대한 보속을 할 수 없는 공심판 때 그 죄들이 밝혀지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또한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어둠으로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진실은 정말 강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막강한 권력과 권세를 누리던 사람들을 끝없이 추락시켜 초라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한 여검사가 용기 있는 고백을 할 때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8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고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피해자들을 응원하고 보호할 수 있게 우리들의 의식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국민들의 감동 포인트가 금메달이 아님이 확인되었습니다. 그것은 성실, 협동, 배려, 우정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았을 때 깊은 감동과 더불어 위안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반칙, 차별, 갑질 같은 모습에 우리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한 마디로 함께 사는 세상임을 더 깊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세상에서는 권력자가 아니라 봉사자인 지도자가 있고, 약자를 배려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진실과 사실에 기초한 토론과 합의 그리고 양보가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희망을 갖게 합니다. 종교를 포함해서 불가침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모든 영역이 고발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감추고 가릴 수 있는 영역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고발의 형식이지만 정화의 시간입니다. 공개된 비밀처럼, 잘못인 줄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행해졌던 모든 불의와 부정들이 청산되는 시간입니다. 혼란스럽고 아프지만 꼭 거쳐야만 하는 시간들입니다. 공심판에서 밝혀지는 것보다는 지금 여기서 밝혀져서 보속하는 것이 우리 영혼에게는 이롭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분이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여기시며 그곳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성전에는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제물 판매대와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순례자들의 절대적인 약점을 이용해서 폭리를 취했고, 사제라는 절대적인 권력과 결탁되어 있어서 아무도 감히 그들의 비리를 고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고발하고 당신의 의로운 분노를 폭발시키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그런 행동이 후에 화가 될 것을(마르 11,18; 루카 19,47) 모르셨을 리 없었고 그렇다고 그들과 맞서 싸워 이길 힘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진실을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용감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이시고 구원하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밝혀져야 피해자가 위로와 치유를 받고 가해자는 뉘우침과 용서를 받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공심판 때에는 뉘우침도 용서를 청함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공심판의 심판관은 예수님이십니다(사도 10,42). 우리는 그 심판관과 여기서부터 함께 지내는 행운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만나 예배드리는 성전이고 하느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그분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고,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십자가 위에서 죄인으로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5).”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마음에 들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심판 때에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고 마침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밝혀져 뉘우치고 통회하며 고백하는 일이 반갑지는 않지만 나중에 그런 것들이 소용이 없는 심판 때에 받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먼저 심판관이신 주님께 마음을 돌리고 가장 작은이들과 함께 계시는 그분을 찾아 잘 해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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