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4월 11일 작은 빛

이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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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작은 빛



숲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작은 꽃이 함박웃음을 짓게 해주었다. 바위틈에 수줍게 작은 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들풀처럼 보였을 것이다. 숲 밖 큰길가에는 벚꽃이 절정을 이루며 화려하게 피어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것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그 이름 모를 작은 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활짝 그리고 진하게 웃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가던 길을 계속 가다보니 숲 길가 여기저기에 그 꽃들이 피어 있었다. 아마 그 전에도 있었을 텐데 보지 못하고 열심히 걷기만 했었나보다. 마음 아픈 소식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주는 세상은 정말 어둡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보도되지 않고, 대형 사건들을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선행과 희생들이 아프고 어두워진 마음을 위로해준다. 그리고 그 작은 빛 하나하나는 거대한 세상의 어둠을 더 뚜렷이 보여준다.

 

하느님의 구원방식은 이해할 수 없다. 그분은 용맹한 장수도, 강력한 임금도, 엄중한 심판자도 아니셨다. 오히려 어둠의 세력에게 희생당하셨다. 수난과 십자가형을 받으시던 때는 최고의회, 대사제에, 헤로데, 빌라도에게 계속 무기력하게 넘겨지셨다. 세상의 빛이셨던 예수님은 그렇게 그들을 방문하시며 그들의 어둠을 밝히셨다. 병자,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들, 죄인들의 어둠을 몰아내셨던 것처럼 그분은 그들의 어둠을 비추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길가에 화려하게 핀 벚꽃은 아름답지만 기쁨을 주지는 못했다. 반면 바위틈에 수줍게 핀 작은 꽃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진한 기쁨을 주어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사람들이고, 세례성사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려는 수도자들은 더욱 그렇다. 위대한 일과 업적으로서가 아니라 검정 옷에 가려진 따뜻한 마음과 소박한 정성으로 어두워진 사람들의 마음을 밝힌다. 어제도 시리아 내전으로 희생당한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파 울었다. 그 아픔을 분노가 아니라 슬픔으로 바뀌었고, 그 모습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 세상 어둠의 모습이 드러난 것임을 알았다. 그분은 그렇게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셨다. 그분과 함께 오늘도 바위틈의 작은 꽃처럼 그러나 워낭 소리를 내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가는 누렁이처럼 나의 소명에 충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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