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연중 18주일)

이종훈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연중 18주일)

제가 재물과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이유는 삶과 선교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소유라기보다는 잠시 관리하고 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크고 작은 사건을 기억나게 해주는 것으로, 글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적은 제 삶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작은 유품이나 사진이 그것입니다. 그 외에는 재물을 소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소유는 불편합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소유될 수 없지만, 내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고 그것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애정을 준 것입니다. 그 외의 이유들로 소유한 재물은 마음을 빼앗아가고 내적으로 분열시킵니다. 수도자들에게 청빈 서원은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의탁이고 그래서 하느님의 소유물이 되지만 그것은 속박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를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유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는 물건에 마음을 빼앗기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재물을 구입하는 순간 일시적인 만족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겠죠. 그러나 그것이 전부입니다. 게다가 정서적인 안정감도 지속되지 않고 금방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오히려 더 불편해집니다. 그렇게 구입하고는 얼마나 지나지 않아 실은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재물은 선한 도구이지만,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재물은 그런 영적 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을 도와줍니다. 이 단순하고 명확한 교리를 알고 있고, 청빈 서원까지 한 수도자가 왜 불필요한 재물을 소유해서 스스로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적여정이 지루하게 느껴져 지쳤거나, 자신과 이웃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완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치고 헝클어지고 상처받아 아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벌거벗은 채로 벌렁 누워있을 수 있고, 더러워져 가리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도 그대로 드러내놓아도 아무런 꾸지람도 공격도 받지 않는, 완전히 안전한 곳은 오직 하느님의 품뿐입니다. 그 품에 있을 때, 포근하고 달콤하고 아무 걱정거리 없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그곳으로 달려가 자신의 그 무거운 마음들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예수님의 지상 선교 사명은 당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 하느님을 알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치유자, 구마자, 혁명가라고 여겼지만, 그분은 그렇지 않다고 사람들의 오해에 분명히 선을 그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해결사가 아니셨습니다. 세상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그렇게 여긴 것은 그들이 그런 분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테고, 구세주는 그런 사람이어야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형제간 재산 분할문제로 다투는 이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4-15).” 그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이 아니라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알려주신 분이셨습니다. 사실 그 길로 가고 있다면 다툼과 갈등도 없을 것이고, 설령 그런 것들이 생겨도 거기에 크게 낙심하지 않을 겁니다. 한 마디로 세상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우리 신앙은 우리 지상 삶의 끝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을 믿고 살아 온 이들은 조심스럽게, 그리고 어떤 이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 다리를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들어왔고 마음에 새기고 있던 그 말씀을 하신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만 재화를 모았던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어 한없이 부끄럽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 모아 두었던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 다 줄 수밖에 없어 빈털터리가 됩니다. 아무리 재물을 많이 쌓아 두어도, 막강한 권력을 지녔어도 때가 되면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재물과 권력은 늙고 병들기 직전까지만 힘을 발휘합니다.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밤낮으로 고민하고 애를 씁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눈과 귀는 어두워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진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마치 제동장치 없는 자전거로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 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끝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던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으로 서게 될 겁니다.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한 상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보물을 숨겨 놓은 곳에 그의 마음도 가 있게 마련입니다(마태 6,21). 그런 이들은 지상에서 자신에게 보답할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었던 아주 지혜로운 이들이고, 자신의 숨은 선행까지 하느님께서는 보시고 상을 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입니다(마태 6,1-4). 그들은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앙은 내적인 것이라서 눈으로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오직 믿을 뿐입니다. 복잡하고 지독한 경쟁사회 속에서 이런 사람들은 바보처럼 보이고, 그들의 삶은 위태로워 보일 겁니다. 그러나 그들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아직도 땅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콜로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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