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6월 19일 원수

이종훈

6월 19일 원수

 

축구가 스웨덴에 졌다. 이겼으면 좋았을 걸. 지면 속상해서, 이기면 흥분해서 잠들기 힘들까봐 보다 말았다. 나는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했다면 이 경기에 어떤 선수가 나오고, 전술은 어떤지 살폈을 것이고, 경기 운영에서 어떤 부분이 아쉽거나 만족스러운지 평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수준의 축구 경기를 관람했음을 기뻐하면서도 우리나라가 져서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축구를 사랑했다면 이렇게 축구경기 자체를 좋아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신 안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화나고 미워지는 것을 나는 어쩌지 못한다. 반사행동처럼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내 안의 반응을 내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나? 하느님께서 이것을 죄라고 심판하신다면 나는 억울하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싫어하는 음식은 언제나 끝까지 싫은 것과 같다. 그것은 아마 내 체질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조금이지만 가끔 그 음식을 먹는다.

 

화가 나고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나는 화내기도 미워하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괴롭기 때문이다. 그를 안 보고 그 상황을 피하면 되겠지만 그런 사람은 다른 곳에도 있고 그런 상황은 언제든지 다시 생길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방법은 단 한 가지 그를 있는 그대로 품어 안고 그 상황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마태 5,44). 정말 듣기 싫다. 지질한 아합 왕이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가 자신을 찾아 왔을 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1열왕 17,20)?”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처럼 아버지 하느님을 닮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전할 때는 행복하게 해주지만 나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지 원수의 말처럼 듣기 싫은 말씀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의지이다. 사랑은 우리를 하느님처럼 완전하게 만든다. 예수님이 완전하신 것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셨기 때문이다. 듣기 싫은 그 말씀을 오늘 또 듣는다. 정말 듣기 싫지만 있는 힘을 다해 그래보려고 한다, 그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런데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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