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17일 성당과 호프집

이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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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성당과 호프집

 

신학생 때 교수 신부님이 유럽 교회의 현실을 말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한 아름답고 큰 성당이 대형 호프집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주일에 한산하던 성당이 주말과 휴일이면 가족과 친구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모여 웃고 이야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울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나쁜 현실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유럽 사람들은 하느님을 잊어버린 것일까요?

 

얼마 전 베트남 공동체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역사가 깊은 관구답게 수도원 건물도 꽤 컸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 그보다 두세 배는 큰 병원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도 원래는 수도원이었는데 공산정부에게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 앞에 병원만큼 큰 도심 공원이 있는데 그 또한 우리 땅이었다고 했습니다. 강제적으로 땅과 건물을 빼앗긴 것이 속상하지만 한 건물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으로, 다른 공간은 공원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고 운동하고 저녁에는 공원 전체가 호프집으로 변했습니다. 빼앗김이 억울하지만 그것들이 사람들을 위해서 잘 사용되어 있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 건물 꼭대기에 십자가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공산당이 왜 저 십자가를 그대로 나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마침 한 형제가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건물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그 십자가를 부셔버리려고 했는데, 그 십자가를 부수던 사람이 죽었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무서워 그 십자가를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병원 건물에는 스테인드글라스 등 옛 수도원의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베트남 공산 정부는 교회를 드러내놓고 박해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요원들이 미사 시간에 참석해서 우리 형제들이 강론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늘 감시합니다. 본의 아니게 그들도 성찬례에 참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대신 병원도 운영해주고 사람들의 휴식과 놀이 공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빼앗겼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는 없애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현실들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분명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신데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교회가 치유와 위로 그리고 지치고 상처 받은 영혼이 쉬어가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씀 정도는 알아듣겠는데, 그 이상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빼앗겼다는 생각에 붙잡혀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내어주고 나누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나누고 넘겨주셨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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