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7월 29일(연중 17주일) 계란으로 바위 치기

이종훈

7월 29일(연중 17주일) 계란으로 바위 치기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킴이 부모의 역할이고, 양들을 돌보고 초지로 이끌어감이 목자의 역할입니다. 그런 일들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고단하고 계속 희생하며 자신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보람과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금전적인 보상이나 노후의 보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핏덩이 하나를 한 사람으로 키워냈다는 것과 그러는 사이 자신도 어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부모이자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부모, 목자, 어른이 됨은 곧 하느님을 닮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 정치인의 죽음으로 지난 한 주내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영화가 끝나야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비로소 알 수 있듯이, 한 인생이 끝나고 나니 그가 어떻게 살았고 또 무엇을 추구했는지 여기저기서 알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을 존경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진실을 거침없이 속 시원하게 공개적으로 특히 기득권과 권력자들 면전에서 밝히는 것이 참 좋았고 후련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습니다. 그들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면서 그들의 처지와 마음을 대변해주었습니다. 힘없고 배우지 못해 자신의 천부적이고 정당한 권리조차 말할 줄 모르는 이들을 대신해서 세상의 두껍고 높은 벽을 향해 외쳤습니다. 그분의 말은 말만 잘하는 다른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아주 평범했습니다. 때로는 저속하게 들릴 정도였지만 그 상황과 요구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그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 13,34). 그 이야기들은 곧 그들의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말도 거칠고 속되게 들렸을 겁니다. 세상이 알고 있는 하느님의 품위와는 잘 맞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분의 연설 중 가장 적절하고 동시에 정말 가슴 아픈 표현은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남자 화장실에 그 여자가 들어와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 사람, 각자 이름이 있지만 모두가 그저 아줌마, 아저씨로 불리는 분들입니다. 그는 바로 그 투명인간들의 친구였고, 보호자요 대변인이었으며, 아버지였습니다. 그들의 목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렇게 불러도 그들 중 아무도 그분을 욕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을 참 많이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 돼서 안타깝지만, 정말 안타깝고 가슴 저리게 슬픈 것은 투명인간들의 눈물 때문입니다. ‘이제 누가 우리들을 알아봐주고, 우리들을 대신해서 외쳐주고,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 준답니까?’

  

 

최저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서로서로 잘 살고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지내자는 것인데 정말 힘듭니다. 모두가 바라는 일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런 게 아닌가봅니다. 이를 두고 을과 을, 을과 병의 전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득상위 10%가 나라 전체 재화의 50%를 갖고 있어서, 90%의 사람들이 나머지 50%를 갖고 나눠 쓰려니 힘들고 어려운 것이겠죠. 백화점 교우 직원들을 위해 주일미사 봉사하는 한 형제가 수억 원짜리 손목시계가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를 절망시키는 이런 종류의 일들은 많습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움켜쥐고 있어서 어려운 겁니다. 잘 알고 있는데도 잘 안 됩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는 느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먼 거리를 달려 왔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들은 버거운 일상에 지치고 권력자들의 횡포에 시달려 기가 꺾였기 때문입니다(마태 9,36). 예수님이 그런 그들을 보시고 제일 먼저 생각하신 일은 그들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요한 6,5). 과연 목자답고 부모다운 마음이고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보자마자 즉시 그들이 되셨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어려운 현실만 보았습니다. 이 많은 이들을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먹이냐는 그들의 주장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았고, 제자들은 두껍고 높은 현실의 벽만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목자셨고 제자들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야 마셨습니다. 우리는 두껍고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라고 시도조차 하지 않지만 굶주린 이들이 바로 자신이라면 안 될 줄 알면서도 그거라도 해볼 겁니다. 하느님은 그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제일 높은 하늘에 계시지만 그 하늘로 오르는 문은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원하시고 또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안 하면 그분은 혼자서라도 하실 겁니다(요한 6,6). 그럴 거라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라도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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