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8월 12일(연중 19주일)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이종훈

8월 12일(연중 19주일)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요즘 TV 방송에 소위 ‘먹방’이 참 많습니다. 남 먹는 거 쳐다보는 것은 추접스럽다고 했는데 요즘은 오락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여러 말이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대리만족일 것 같습니다. 그런 방송에 눈이 갈 때는 역시 배가 고플 때입니다. 단지 허기졌을 때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도 먹음으로 해소한다고 합니다. 먹음은 살기 위한 원초적인 행위입니다. 하느님도 최초의 인간에게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따먹으라고 하셨고,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 이스라엘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합니다. 우리도 아는 것을 하느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늘 영혼의 양식, 영적인 음식을 말합니다. 그런 음식은 무엇이고, 우리의 영이 밥을 먹음은 무슨 뜻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영혼이 허기지고 또 목마를 때는 어떤 경우일까요? 기운 빠지고 맥 빠져 만사 다 귀찮아질 때일 것 같습니다. 좀 잘 살아보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주위에서 이런 나에게 지지와 응원은 고사하고 온갖 비관적인 말들로 김새게 만들고 때로는 다리 걸어 넘어지게도 합니다. 이럴 때는 정말 화납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라고(에페 4,31-32)” 말합니다. 더 기운 빠지게 하는 말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고 하셨으니 다른 생각은 말아야겠습니다. 화나는데 화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가 이렇게 만든 건데 화내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 목적은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기(에페 5,1)”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을 닮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것은 땀 흘려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어떤 성과 같은 게 아닌 가 봅니다.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함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인내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화나게 하니 화나고, 나에게 해를 끼쳤으니 원한이 생기는데 그것을 다른 모든 악한 마음과 함께 버리라는 권고입니다. 화나게 하니 화나고, 상처를 줬으니 미워하게 되고,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면 마음이 끌리는 걸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신앙 때문이 아니어도 참고 절제하고 견디어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신앙은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됨은 물론이고 단순한 버티기를 넘어 더 성장하고 거듭 태어나게 해줍니다. 그렇다고 화나고, 복수심에 온 몸이 타오르는 그 때에 주님의 수난과 고통을 떠올려야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생각할 수 없음은 우리는 아주 잘 압니다. 있는 힘을 다해 오직 참고 견디며 그 욕구들이 사라질 때까지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 폭풍우가 지난 뒤에 비로소 우리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고 또 훌륭합니다. 주님도 우리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음을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는 조금 더 성장하고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간 것입니다.

 

엘리야는 카르멜산에서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과 대결해서 놀라운 기적과 함께 그들을 모두 처단하며 하느님이 진정 어떤 분이신지 알렸습니다(1열왕 18,17-40).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권력자들을 피해 도망갑니다. 광야에서 고작 하룻길을 가고 지쳐버린 그는 하느님께 차라리 거기서 죽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천사들을 시켜 그를 흔들어 깨우고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1열왕 19,7).” 하며 잘 구워진 빵과 물을 주었습니다. 겨우 하룻길에 지쳐 떨어진 그는 그 빵과 물을 먹으며 사십 일을 더 걸어 마침내 하느님 계신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느님 계신 곳으로 가는 길은 멉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셨으니 갈 길도 알려주시고 먹을 것도 마련해주실 겁니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요즘은 그저 잘 참고 견디고 가을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이 시간을 이겨낼 다른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신 주님을 받아 모시고 힘을 얻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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