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연중 22주일)

이종훈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연중 22주일)

 

가끔 단체나 교우들의 모임에 식사 초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식사 자리에 가면 제일 먼저 묻습니다. “제가 어느 자리에 앉으면 될까요?” 그러면 제가 앉아야 하는 자리를 정해주십니다. 물론 그런 자리에 앉고 싶지 않지만, 언제나 가운데 자리, 좋은 자리입니다.폐쇄공포증이 약간 있는 저에게 양 옆이 꽉 막힌 자리가 불편하지만, 교우들이 신부님이 앉아 있기를 바라는 자리기에 그냥 거기에 앉습니다. 사제는 결코 높은 사람이 아니고, 게다가 수도자의 신분으로 그런 자리에 앉아 높은 사람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참 거북한 일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어느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루카 14,1). 그런데 그 곳은 신부님이 교우들 모임에 초대 받은 자리와 같은 곳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은 그분을 관찰하고 시험해보려는 어색한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루카 14, 1-6). 그러니 그분이 높고 좋은 자리에 앉아계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그 잔치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주시고 모두를 초대하실 당신의 혼인잔치를 떠올리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장차 당신이 이루실 십자가 희생제사로 모든 이가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초대받는 잔치였습니다. 그 잔치 자리에 초대받는 이들이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기에 초대받은 것이 아닙니다(마태 22, 9-10). 오로지 그 혼인잔치,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하는 그 잔치를 마련하신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과 사랑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과 자비로 마련된 그 잔치는 모든 인간이 다 채울 수 없을 만큼 큰 잔치이고, 그 잔치의 주인은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를 모두 채우고자 하십니다(루카 14, 21-23).

 

우리 모두는 그 잔칫집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분의 초대를 무시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 하나를 알려주셨습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루카 14, 8.10).” 예수님이 전해주신 복음이 문제 해결책이나 처세술 같은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정보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괜히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끌려 내려와 원래 자기 자리보다 더 낮은 자리에 앉아 망신을 당하는 것보다, 일부러 낮은 척 했다가 더 높은 자리로 옮겨져 영광스럽게 되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끝자리에 앉아라.’는 말씀은 그 잔치가 어떻게 마련 됐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떤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지 알려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어지는 또 다른 비유에 잘 드러납니다(루카 14, 12-14). 한 마디로 보답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라는 교훈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자신의 선행과 자선을 철저히 숨기고, 보답할 수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 그에 대한 보상을 그들이나 이 세상이 아닌 오직 하느님 아버지께 받을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마태 6,3-4). 우리가 노력하여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오로지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아무 대가 없이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를 굳이 말하자면, 그분의 사랑에 무한히 감사드리고 그런 사랑을 믿음입니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가 바로 예수님의 혼인 잔치, 하느님과 죄인이 결합하는 잔치입니다. 그렇게 초대받은 이가 어찌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자리에 초대받은 것만으로 감사하며 저 문간에라도 앉아 있을 수 있음을 다행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 말씀대로 보답 받을 수 없는 선행과 자선을 즐겨 베푼 사람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보물, 재물이 있는 곳을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하늘나라, 하느님 계신 곳, 예수님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셨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는 주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며 살다가 그 날이 오면 그는 끝자리를 찾아 가 앉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네가 여기 앉아 있으면 안 되지, 이리 올라앉게.’하시며 그 동안 숨겨져 있던 그의 선행과 자선이 거기 모인 모든 이들과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실 것입니다.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있을까요?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번호 제목 날짜
1653 [이종훈] 나해 8월 13일 하느님의 혼인(+MP3) 2021-08-13
1652 [이종훈] 나해 8월 12일 용서를 위한 노력(+MP3) 2021-08-12
1651 [이종훈] 나해 8월 11일 약속의 땅(+MP3) 2021-08-11
1650 [이종훈] 나해 8월 10일(성 라우렌시오 축일) 생명의 두드림(+MP3) 2021-08-10
1649 [이종훈] 나해 8월 9일 성전(+MP3) 2021-08-09
1648 [이종훈] 나해 8월 8일(연중 제 19주일) 순례 음식(+MP3) 2021-08-08
1647 [이종훈] 나해 8월 7일 죄의 뿌리(+mp3) 2021-08-07
1646 [이종훈] 8월 6일(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십자가의 영광(+MP3) 2021-08-06
1645 [이종훈] 나해 8월 5일 수난(+MP3) 2021-08-05
1644 [이종훈] 나해 8월 4일 신앙의 본질(+MP3) 2021-08-04
1643 [이종훈] 나해 8월 3일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시는 하느님(+MP3) 2021-08-03
1642 [이종훈] 나해 8월 2일 자비(+MP3) 2021-08-02
1641 [이종훈] 나해 8월 1일(연중 18주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대축일) 나약한 인간(+MP3) 2021-08-01
1640 [이종훈] 나해 7월 31일 십자가의 길(+MP3) 2021-07-31
1639 [이종훈] 나해 7월 30일 예배(+MP3) 2021-07-30
1638 [이종훈] 나해 7월 29일 저 너머에 있는 것(+MP3) 2021-07-29
1637 [이종훈] 나해 7월 28일 너울(+MP3) 2021-07-28
1636 [이종훈] 나해 7월 27일 만남의 천막(+MP3) 2021-07-27
1635 [이종훈] 나해 7월 26일(성 요아킴과 성 안나 기념일) 희망 만들기(+MP3) 2021-07-26
1634 [이종훈] 나해 7월 25일(연중 17주일) 보리빵 믿음(+MP3)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