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9월 6일 실패

이종훈

9월 6일 실패

 

우리는 어느 때에 벌거벗은 자신을 만나나? 피정, 기도, 깊은 묵상도 그 자리가 되겠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때는 실패인 것 같다. 낙담과 원망으로 시작하지만 왜 실패했나부터 시작해서 결국 나는 무엇을 바랐고 그것을 바랐던 나는 누구인가 묻게 된다. 그 시간은 아프면서도 치유 받는 때이기도 하다. 벌거벗고 민낯이 되었을 때가 하느님을 만나는 가장 적절한 때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동료들을 부르셨다. 우연히 만난 그들을 그냥 초대하셨을 것 같지는 않다. 오며가며 그를 지켜보셨을 것이다. 그날 베드로는 실패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닌데도 실패는 언제나 기운 빠지고 어둡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보라고 제안하셨다(루카 5,4). 베드로는 어부였고 예수님은 목수였다. 자존심 상하는 제안이었지만 그대로 하였더. 아마 지친 마음으로 그물을 손질하며 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다.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그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고기잡이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그런 것을 알고 있다면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그것보다는 그 많은 물고기를 보여주시며 ‘당신이 원하는 게 이런 겁니까?’ 그의 속내를 드러내보이셨기 때문일 것 같다. 그것을 지켜 본 다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베드로 그는 그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하느님 앞에 알몸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다(창세 3,10; 요한 21,7).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5,10).” 사람들이 하느님을 대면하는 시간에 언제나 듣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그 때 그들은 언제나 알몸이었다. 죄, 절망, 병고, 절박함과 무기력함 등으로 자신의 밑바닥을 보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밑이라서 차라리 안전하고 편한 곳이었을 수도 있다. 실패는 싫고 아프지만 가려지지 않는 자신을 보는 시간이다. 허황된 세상의 지혜로 치장해 가려졌던 자신의 알몸과 민낯을 보는 시간이다(1코린 3,20). 그리고 그 때가 하느님을 대면하는 두려운 시간이지만 삶의 여정이 바뀔 수도 있는 시간이다. 참된 행복의 길로 경로를 바꾸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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