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9월 9일(연중 23주일) 들어라

이종훈

9월 9일(연중 23주일) 들어라

 

하느님이 먼저 우리에게 말씀을 걸어오신다. 몰래 숨어서 몇몇에게만 말씀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이 매일 매 순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분의 목소리가 작고 여린데다가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 말씀을 잘 듣지 못한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다보니 이제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분이 안 계신 줄로 알게 된 것 같다.

 

하느님 말씀을 들으려면 홀로 있어야 하고 조용해야 한다. 세상이 복잡하고 소란스럽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인주의가 큰 문제라고 걱정들 한다. 1인 가구율도 거의 30%란다. 지하철과 버스도 대부분 개인승객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검색하고 대화하고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혼자 있어서도 홀로 있지 못한다. 하느님을 대면하고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싫은가 아니면 두려운가? 그분이 살아 말씀하고 계심을 잊었는데 싫음이나 두려움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듣지 못하니 말하지 못한다.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으니 그분의 말씀을 전할 수도 없다. 말해도 앵무새나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원론적인 말과 규칙이나 의무들을 늘어놓거나 때로는 위협적인 말을 내뱉기도 한다. 예수님은 한 동네 사람으로 그 동네 말과 생활로써 하느님을 전하셨는데 우리는 삶과 동떨어지고 한국말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하느님을 전하는 것 같다. 눈으로만 듣고 그 말씀을 삶으로 해석하지 않은 당연한 결과이다. 자신도 모르고 실천하지 않는 것을 말하니 청중들 마음이 움직일 리가 없다.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군중에게서 떼어내어 따로 데리고 나가셨다(마르 7,32). 그와 단 둘이 계셨다. 그분이 하느님이신 줄 알았더라면 얼마나 두려웠을까? 병은 죄의 결과이니 한 죄인이 홀로 심판자를 대면하고 있던 셈이다. 다행히도 그는 그걸 몰랐고 게다가 예수님은 그를 만지며 참으로 다정스럽게 그를 대해주셨다. 듣고 말하게 되어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하느님을 대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군중 속에 있을 때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세상사에 함몰되어 살다보니 자신도 보지 못하고, 곁에 그리고 안에 계신 하느님도 만나지 못한다. 세상의 소음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위협이 우리를 홀로 있지 못하고 만들고 하느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화가 풀리지 않는다. 먹고 또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우리 하느님은 태워 버리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느님이시다(신명 4,24). 우리가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참지 못하신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폭력적으로 떠난 마음을 붙잡아오지 않으신다. 그 대신 온갖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돌아오라고. 그리고 기다리신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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