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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9월 23일(한국순교자대축일 경축이동) 의문과 선택

이종훈

9월 23일(한국순교자대축일 경축이동) 의문과 선택 

 

외국 형제들이 가끔 한국에는 어느 수도회가 들어가서 신앙의 씨앗을 뿌렸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한국교회는 수도회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그 씨앗을 가져와 이 땅에 심었다고 대답하면 대부분 토끼눈이 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는 평신도가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실학자들 몇몇이 교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다가 결국 신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학문적인 연구가 어떻게 신앙이 되었는지 신비롭습니다.

 

 

조선의 통치이념은 유학 혹은 유교였습니다. 그 당시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새로운 학문, 철학, 통치이념을 찾았을 것입니다.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들을 매료시켰던 서학 즉, 천주교 교리의 특징은 인간존중과 평등사상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은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잘 알다시피 신분의 차이가 엄격했던 사회구조 안에서 그런 사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특히 기득권층인 양반계급에게는 그들의 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 중 몇몇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당연한 그 통치이념과 사회구조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 해결책을 서학 천주교 교리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몇몇 양반 학자들이 처음으로 천주학을 연구했지만 이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교우 공동체를 만들고 그대로 실천하고 민중들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중인계급이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하고 하느님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론을 실제로 실천했습니다. 그 선택은 기득권과 권력층에게는 심각한 도전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뒤흔드는 불온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국법으로 금하고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혹독하고 잔인하게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더 멀리 퍼져나갔고 더 깊이 연구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원하거나 기존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려고 그랬던 것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평화롭게 사는 길 즉 진리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순교는 희생이 아니라 진리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권과 평등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와 나라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롭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이 아직 복음화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 박해를 받을 겁니다. 예수님의 죄명은 종교적으로는 하느님 모독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사람들을 현혹시켜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선동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선택과 실천이 당신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 길이 두려웠지만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도 당신처럼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면 온 세상보다 귀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3-25)?”

 

 

우리의 신앙은 교회 울타리 안의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선물입니다. 인권과 평등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넘어 가장 작은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봐야한다고 외치고 또 실천합니다. 거기에 주님이 계시고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게 산다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세상이 박해해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힘도 줍니다. 성직과 수도서원이 아니라 세례가 그렇게 해줍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그것을 목숨을 바쳐 지켜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들 거의 대부분은 학자나 혁명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보았던 것을 우리도 볼 수 있고 그들이 만났던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증언했던 것을 우리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잘 따라갈 수 있게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마지막까지 도와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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