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하는 이유 (연중 26주일)

이종훈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하는 이유 (연중 26주일)

 

운전 중에 가끔 라디오에서 가난하고 딱한 처지에 놓인 분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도움을 청하는 방송이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채널을 바꿉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온전히 운전할 자신이 없어서입니다. 그런 사연들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 나고 이런 세상이 원망스러워져 감정이 격해집니다. 또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제 자신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 같은 죄책감이 듭니다. 그런 감정에 휩싸이면 운전하기 어려워질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듣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분들의 딱한 사정을 듣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분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렇게 마음 아파하며 기도하고 성금을 조금 보내는 것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치 제가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지만, 사실 예수님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세상을 뒤바꾸어 놓지 못하셨습니다.

 

가난하고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면 연민이 생기고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는 노력하거나 배우지 않아도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마치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 현상을 보면 숨이 멎을 것 같은 경외심과 함께 창조주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이런 것들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심어 놓으신 당신의 법입니다(로마 1,8-32; 2,14-15).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몰라도 이미 마음 안에 새겨진 지워질 수 없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그 법의 제정자답게 공생활 중에 만난 딱한 처지에 놓인 모든 이들을 도와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 선교사명의 본질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이 세상에 전해주시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세상 안에는 가난한 이도, 돌보는 이 없어 딱한 처지에서 고통을 겪는 이웃도 없을 겁니다. 예수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이 곧 그런 세상에서 사는 원리였으니, 그분을 만나 청한 이들은 모두 회복되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그 원리에 따라 살면서 그런 세상을 조그맣게 실현했습니다(사도 2,42-47).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희생되셨습니다. 그것이 모든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고발한 죄목은 신성모독과 군중선동죄였습니다. 가난하고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엄격한 안식일 규정을 자주 어기셨다고, 한낱 인간인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셨다고 해서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율법의 제정자가 율법을 어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런 파격적인 행동은 율법을 파괴함이 아니라 완성하시려는 의도였고(마태 5,17), 사실 그분의 그런 행동들은 당신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행보를 두고 파격적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당신에게는 사제로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여기실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행동을 이상하게 보고, 때론 불편해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권력자들과 강한 이들의 그것입니다. 그런 세상 안에는 가난도 고통도 없어야 해서 그들은 자신의 집 안에 가난과 고통을 들여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서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지만, 이어지는 하느님을 만나는 저기에서는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어 철저히 가난해집니다.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세상 안에는 부자도 가난한 이도, 병자도 허약한 자도, 어려움을 겪으며 절망하는 이도 없습니다. 거기에서는 모든 영혼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흡족합니다. 그 세상은 여기서 죽어야 비로소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여기에 이미 들어와 있는 곳입니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여기서 다 받았으니 거기에서는 받을게 없는 것이고, 여기서 가난해서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이들은 거기에서 다 받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라자로’ 비유 말씀(루카 16,19-31)으로 그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들려주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부자는 단순히 재물이 많은 사람만이 아니라 율법도 아주 잘 알고 열심히(?) 사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그는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도 잘 아는 사람이었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루카 16,27-30). 그는 재물에 온 마음을 빼앗겨 바로 집 밖에서 딱한 처지에 있던 이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재물과 지식에서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다 누렸던 그는 그 풍요로운 세상이 끝나며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새겨준 법, 즉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도와주라는 명령을 무시했던 결과입니다.

 

그 법은 모든 것 위에 있습니다. 국법도, 이념도, 종교도, 철저한 금욕생활도, 기도생활도 이보다 높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분이 되셨고, 가장 부유한 분이셨지만 가장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장 작은이들 안에서 당신을 찾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마태 25,40), 그로써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어주십니다(2코린 8,9). 가난하고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만나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그 괴로움은 우리를 진짜 부자가 되게 만들어줍니다. 가난, 비참, 고통 앞에서는 모든 마음이 열리고, 모든 높은 것이 머리를 숙입니다. 마더 데레사와 빈센트 두 성인은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전 생애를 그들을 위해 바쳤고, 그래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는 다른 모든 것들에 우선합니다(빈센트 성인). 이제는 마음 아프고 괴로울까 걱정돼서 가난하고 딱한 처지에 놓인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지 않고, 오히려 그 아픔 속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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