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o신부의 영원한 기쁨

[이종훈] 10월 7일(연중 27주일) 혼인

이종훈

10월 7일(연중 27주일) 혼인

 

혼인 미사 강론은 언제나 같습니다. 저의 혼인 강론은 신혼부부에게 주는 몇 가지 당부입니다. 가끔 강론에 대한 평을 듣는데 신혼부부들과 기혼부부들 좋아하는 내용은 ‘서로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해주라’는 말입니다. 부부는 한 몸이라지만 사람은 하나의 작은 우주와 같아서 혼인은 두 작은 우주의 결합과 같습니다. 그래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배우자만 바라보아서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둘이 한 곳을 바라볼 때 거기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바라보아야 할 한 곳,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한 곳을 잘 보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존중 사랑 신뢰로서 배우자의 홀로 있는 시간을 허락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혼부부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기혼부부들은 마음 뜨끔해지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그럴까?’하지 말고 ‘저 사람은 그렇구나.’하며 서로를 긍정해주라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지만 여전히 따르기 힘든 권고입니다. 혼인과 가정은 삶입니다. 연예와 혼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고 다른 세상입니다. 밖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안에서는 보게 됩니다. 그와 내가 다름을 절감합니다. 그도 나와 같기를 바라고 그렇게 요구하지만 잘 안될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듯이 나도 그에게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런 그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더 나아가 존중하기 시작합니다. 우주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고 어쩌면 끝까지 안 변할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이 같아지지는 않지만 그렇게 둘은 하나가 되어 갑니다.

 

 

혼인과 가정생활을 하지 않는 제가 그것에 대해 말할 자격이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삼자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혼인과 가정은 아니지만 수도공동체 생활하기 때문에 부부의 어려움에 조금은 동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과 삶의 전문가라고 자부합니다. 사람은 저절로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의 손수 지어 만드셨습니다. 혼인도 당신이 만들어주셨습니다. 배우자는 협력자이고(창세 2,18) 둘은 한 몸이 됩니다(창세 2,24). 최초의 사람은 동물 중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찾지 못했고, 남자의 배우자는 여자이고 여자의 배우자는 남자입니다. 처음부터 그랬고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그럴 겁니다.

 

 

하느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으십니다(2코린 1,19). 그분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편의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마치 하느님의 법이 바뀌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마르 10,5). 예수님도 바리사이들의 도전적인 질문에 창세기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서 대답하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6-9).” 구약시대는 일부다처제였고, 아직까지도 여자를 소유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은 이 모두를 벌써 그때부터 부정하셨습니다(마르 10,11-12). 매우 진보적이면서 또 동시에 지독히 보수적이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보수이며 진보입니다.

 

 

혼인에 대한 말씀 이후에 어린이를 축복하신 내용이 이어집니다. 문단 배열이 어색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매우 적절합니다. 혼인은 두 사람의 삶이 아니라 가정을 이루는 시작이고 계약입니다. 가정에는 부모와 자식이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혼인하기로 결심하고 동의했지만 사실 그날부터 사랑을 배워갑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그 사랑은 무르익어갑니다. 이해할 수 없던 배우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자식에게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내어주면서 둘은 비로소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또 다른 작은 우주인 자녀들의 마음속에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배우자도 자녀들도 품을 떠납니다. 그러면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가 보았던 곳이 배우자도 자녀도 아니라 영원한 말씀이신 하느님이었다면 그는 혼자가 아님을 압니다.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이 그에게 가르쳐준 사랑이 바로 하느님이셨음을 알게 될 겁니다. 그때부터는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서 갈라놓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로마 8,39)과 하나 되는 날, 참된 혼인, 완전한 결합을 준비합니다. 하느님이 계셔서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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